임원근
임원근(林元根, 경기도 개성 1899년 3월 4일 ~ 1963년 5월 18일)은 일제강점기에 활동했던 사회주의계열 독립운동가, 언론인이다. 본명은 임용풍. 한때 신간회에도 참여했다. 사회주의 페미니스트 허정숙의 본 남편이었다가, 그가 투옥되어 재판받던 중에 이혼했다. 해방 후 민주주의통일전선 등에서 활동하다가 5.16 군사 정변을 지지하기도 했다.
출생~사망 1899년 3월 4일 ~ 1963년 5월 18일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13
문서 정보
- 출생 ~ 사망
- 1899년 3월 4일 ~ 1963년 5월 18일
- 본명
- 임용풍
- 출생
- 1899년 3월 4일, 경기도 개성
- 사망
- 1963년 5월 18일
- 성별
- 남성
- 국적
- 대한민국
- 경력
- 신간회 참여, 민주주의통일전선 활동
- 직업
- 독립운동가, 언론인
- 활동 기간
- 일제강점기 ~ 대한민국
- 배우자
- 허정숙 (이혼)
- 위치
- 37.9717, 126.5528
임원근(林元根, 경기도 개성 1899년 3월 4일 ~ 1963년 5월 18일)은 일제강점기에 활동했던 사회주의계열 독립운동가, 언론인이다. 본명은 임용풍.
한때 신간회에도 참여했다. 사회주의 페미니스트 허정숙의 본 남편이었다가, 그가 투옥되어 재판받던 중에 이혼했다. 해방 후 민주주의통일전선 등에서 활동하다가 5.16 군사 정변을 지지하기도 했다.
생애
초년기
1899년 경기도 개성에서 태어났다. 상인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상업학교인 선린상고를 나와 일본 경응의숙에서 수학하였다. 1920년 2월부터 대전청년회(大田靑年會)의 총무로 일하다 1920년 10월 중국 상해(上海)로 망명하였다. 거기서 박헌영과 김단야와 만나게 되어 서로 돈독한 친분을 쌓게 되는데, 이들을 삼인당(三人黨)이라 불리게 된다.
독립운동과 공산주의 운동
고려공산당 활동
1921년 5월, 안병찬(安秉瓚)이 설립한 사회주의연구소(社會主義硏究所)에 들어가 사회주의 이념을 연구하는 한편, 고려공산당 이르쿠츠크파 단체의 상해지부에 가입하여 동당 예하의 고려청년회(高麗靑年會) 위원에 피임되었다.
1922년 1월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극동인민대표대회(極東人民代表大會)에 김규식(金奎植)·여운형(呂運亨) 등과 함께 조선대표단의 일원으로 참석한 후, 동년 4월 2일 김단야·박헌영과 함께 국내에서 반제혁명(反帝革命) 사상을 비밀리에 선전할 목적으로 귀국 도중 일경에 피체되어, 동년 5월 30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징역1년6월을 받아 옥고를 치르고 1924년 1월에 출옥하였다.
출옥직후인 1924년 2월 신흥청년동맹(新興靑年同盟)의 중앙집행위원장으로 위촉받아 취임하였다.
기자 생활과 2차 체포
1925년 4월 박헌영·김단야등과 함께 에 입사하여 기자로 활동했었고 동시에 를 조직, 에 가입하고 중앙집행위원회 선전부 위원으로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그러던 중, 1925년 12월 4일 재차 일제 경찰에 피체되었다. 그 후 1928년 2월 21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체포되었다. 당시의 변호사는 장인이기도 한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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