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인
이종인(李宗仁,1556년 ~ 1593년)은 조선 중기의 무신이며 本貫은 개성이다., 1580년 무과 급제 후 임진 왜란에 참전하여 진주성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이황(李滉)의 문인이다. 나주 남평에서 태어났다.
출생~사망 1556년 ~ 1593년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14
문서 정보
- 출생 ~ 사망
- 1556년 ~ 1593년
- 출생일
- 1556년
- 출생지
- 나주 남평
- 사망일
- 1593년
- 직업
- 무신
이종인(李宗仁,1556년 ~ 1593년)은 조선 중기의 무신이며 本貫은 개성이다.1, 1580년 무과 급제 후 임진 왜란에 참전하여 진주성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이황(李滉)의 문인이다. 나주 남평에서 태어났다.
생애
임진왜란 이전의 생애
출생
1556년(명종 11년)에 태어났다.
이종인은 나주 남평 출신이며 本貫은開城. 성격이 굳세었고 절조가 있었다. 무과에 합격 하였다. 키는 8척 장신이었으며 외모가 수려하였다. 일찍부터 활쏘기와 말타기를 좋아하는 데다가 평소 무인이 될 자질을 연마하였다. 원래 그는 학문 연구에 뜻을 두고 퇴계 이황의 문인이 되었으나 그 뒤 타고난 기질이 대담하고 호방하여 무예를 연마하게 된다.
무과 급제와 관료 생활
1580년(선조 13년) 별시무과(別試武科)에 응시해 급제하였다. 이후 군관으로서 북방을 지키게 되었는데 1583년 여진족 니탕개(尼湯介)가 쳐들어와서 경원(慶源)이 함락되어 당시 함경도 병마절도사인 이제신(李濟臣)이 그에 대한 죄를 지고 의주 인산진(麟山鎭)으로 유배되는 일이 벌어졌다. 이에 대한 토벌군에 참전하여 공을 세웠고, 이후에도 북방 수비에서 수차례 공을 세웠다.
임진왜란과 제2차 진주성 전투
임진왜란때 김해 부사로써 방어하는 일에 많은 조치를 하였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김성일의 휘하에서 활약했으며, 1593년 음력 4월 김해부사를 제수받았다. 그해 음력 6월 지난해(1592년)의 제1차 진주성 전투에서 패한 왜군이 무슨 일이 있어도 진주성을 함락시키라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엄명을 받아 5대(隊) 92,972명에 달하는 대군을 이끌고 진주성을 공격하자, 진주성에 합류하여 왜군과 싸워 뛰어난 용맹을 발휘하여 두드러지는 활약을 보였다. 음력 6월 28일 왜군이 총공격을 가해 성의 방어가 무너질 위기에 처하자 왜병 다섯을 쳐죽여 근처의 왜병들이 겁을 먹고 달아났으며, 그날 밤 초경에 왜군이 신북문 쪽으로 공격해오자 직속 수하들을 거느리고 싸워 이를 물리쳤다.
제2차 진주성 전투는 제1차 전투와 달리 진주목사인 서예원(徐禮元)이 나약하고 장수의 자질이 부족하여 조선측은 일괄적으로 통제되지 못하고 관군과 의병을 이끄는 여러 장수들의 개별적인 역량에 의지해 싸워야 했다. 28일 서예원이 야경을 소홀히 하여 적이 성 밑을 파서 성벽이 무너지게 되자 이종인은 몹시 노하여 서예원을 꾸짖기도 했다. 이날 전투에서 진주성 사람들이 크게 믿고 의지하던 충청병사(忠淸兵使) 황진(黃進)이 죽고 황진과 더불어 이름이 높았던 사천현감(泗川縣監) 장윤도 죽자 조선 측의 사기가 크게 떨어졌으며, 왜군에서 가 고안한 공성 병기 귀갑차(龜甲車)가 조선 측 몰래 성 밑을 파서 성벽이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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