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무
이종무(李從茂, 1360년~1425년)는 조선 초기의 조선전기 좌명공신 4등에 책록된 공신이자 무신이다. 이을진의 아들로 본관은 장수이며 어려서부터 말타기·활쏘기에 능하였다. 1381년 고려 우왕 때 강원도에 침입한 왜구를 격파하고, 1397년 조선 태조 6년 왜구가 침입하자 끝까지 싸워 이를 격퇴하였으며 세종 때 쓰시마섬을 정벌하는 공을 세운다.
출생~사망 1360년 ~ 1425년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전 11:55
이종무(李從茂, 1360년~1425년)는 조선 초기의 조선전기 좌명공신 4등에 책록된 공신이자 무신이다.1 이을진의 아들로 본관은 장수이며 어려서부터 말타기·활쏘기에 능하였다. 1381년 고려 우왕 때 강원도에 침입한 왜구를 격파하고, 1397년 조선 태조 6년 왜구가 침입하자 끝까지 싸워 이를 격퇴하였으며 세종 때 쓰시마섬을 정벌하는 공을 세운다.
제1차 왕자의 난 당시 정안대군 이방원을 도운 공로로 좌명공신 4등에 녹훈되었고, 최종 관직은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 찬성사에 이르렀고, 통원군(通原君)에 봉해졌다가 장천군으로 개봉되었다. 시호는 양후(襄厚)이다.
개요
고려 공민왕 9년 1360년에 장천 부원군 이을진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어려서부터 말타기와 활쏘기에 능하였다. 1381년 우왕 때 14세의 나이로 아버지를 따라 강원도로 쳐들어온 왜군을 물리친 공으로 정용호군(精勇護軍)이 되었다. 1392년 조선이 건국되었고, 1397년 옹진에서 만호(萬戶)의 벼슬에 재직중 왜군이 다시 쳐들어와 성을 포위하자, 이에 끝까지 싸워 적을 물리친 공으로 첨절제사(僉節制使)가 되었다가 돌아와 상장군이 되었다.2
1400년 제2차 왕자의 난 때는 정안대군 이방원의 편에 가담하여 회안대군 이방간(李芳幹)의 군사를 괴멸시켰고, 이로 인해 1406년 익대좌명공신의 호를 받고 통원군에 책봉되었고, 의주 등지의 병마절제사로 승진되었다.2 그 뒤 안주도병마사(安州都兵馬使), 안주절제사(安州節制使)를 거쳐 의정부좌참찬(左參贊) 등을 역임한다.
대마도 정벌
세종 원년 1419년 삼군도체찰사(三軍都體察使)가 되어 군함 227척을 거느리고 쓰시마섬을 정복하였다. 대마도 정벌을 위해 마산포를 출발하여 1419년 음력 6월 12일 주원방포(현 추봉도)를 기착지로 삼았다. 에는 세종 원년 음력 6월 19일 이종무가 거제도 남쪽에 있는 주원방포(周原防浦)에서 출발하여 다시 쓰시마섬으로 향하였다. 당시 총 227척의 규모로 출정을 하였으며, 6월 17일 출발하여 바람(마파람) 때문에 돌아왔다는 기록이 있다. 6월 20일 오시에 쓰시마섬에 도착하여, 두지포에 내려서 작전을 수행하였다. 적선 129척을 빼앗고, 가옥 1993호를 불태웠으며, 중국인이 포함된 포로를 구출하였다. 이 공으로 이종무는 장천군(長川君)에 봉해졌다. 그러나 기습을 받아 전사한 박실 등의 손실에 대해 조정은 끈질기게 죄를 물었고, 세종은 이종무를 감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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