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립
이유립(李裕岦, 1907년 12월 18일 ~ 1986년 4월 18일)은 한국의 종교인으로 태백교라고 하는 소수종교의 교주이자, 민족운동가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친일 의혹이 제기되기도 한다. 본관은 고성(固城), 자는 채영(采英)·중정(中正), 호는 한암당(寒闇堂)·정산초인(靜山樵人)·단하산인(檀下山人)·호상포객(湖上逋客)·단학동인(檀鶴洞人)이다.
출생~사망 1907년 ~ 1986년 4월 18일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12
문서 정보
- 출생 ~ 사망
- 1907년 ~ 1986년 4월 18일
- 본명
- 이유립
- 로마자 표기
- Lee Yu-rip
- 출생
- 1907년 12월 18일
- 사망
- 1986년 4월 18일
- 성별
- 남성
- 국적
- 대한민국
- 직업
- 종교인, 민족운동가
- 소속
- 태백교
이유립(李裕岦, 1907년 12월 18일 (1907년 음력 11월 14일)1 ~ 1986년 4월 18일2)은 한국의 종교인으로 태백교라고 하는 소수종교의 교주이자, 민족운동가로 알려져 있다.3 하지만 일각에서는 친일 의혹이 제기되기도 한다.4 본관은 고성(固城), 자는 채영(采英)·중정(中正), 호는 한암당(寒闇堂)·정산초인(靜山樵人)·단하산인(檀下山人)·호상포객(湖上逋客)·단학동인(檀鶴洞人)이다.
생애
고려말 문신인 이암(李嵒)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이관집(李觀楫)3, 어머니는 태인 백씨이다.5 어려서부터 한문을 익히고, 1915년 9살에 오동진(吳東振)이 비밀로 가르치는 구한국군(舊韓國軍)의 노래와 행진연습을 하였다. 1919년에는 신안동(新安洞)에서 태극기를 들고 조선독립만세운동에 가담하는 등 애국사상이 강하였다고 한다.3 하지만 이유립 및 아버지 이관집의 독립운동 관련 행적은 모두 이유립 본인이 쓴 책을 출처로 하고 있으며, 다른 곳에서 교차 검증되지 않는다.64
약력
- 1907년 평안북도 삭주군 구곡면 안풍동 구령포 청계령산 아래 청계곡에서 단해(檀海) 이관집의 4남으로 출생.
- 1921년 조선독립소년단(朝鮮獨立少年團) 조직활동에 참가해 단장이 됨.3
- 1924년 ~ 1927년 삭주고등보통학교 3학년 입학, 졸업
- 1931년 7월 조선총독부 발행 월간지 《조선》에 시 '사회(寫懷)' 게재됨.
- 1933년 8월 조선총독부 발행 월간지 《조선》에 시 '삭주(朔州) 을산촌(乙山村)' 게재됨
- 1933년 안순환(安淳煥)이 설립한 명교학원(明敎學院: 조선유학회 또는 조선유교회) 입회
- 1935년 삭주유교청년회지교부장(朔州儒敎靑年會支敎部長)7, 《일월시보》(조선유학회 기관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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