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이라크 전쟁
이란-이라크 전쟁은 1980년 9월 22일 이라크 사담 후세인이 이란을 침공하며 발생했다. 주 목표는 샤트알아랍강 획득 및 이란혁명정권의 타도였다. 이라크는 선전포고 없이 이란을 공격했지만 전쟁을 진척하지 못하고 이란에게 격퇴된다. 유엔 안보리의 휴전 명령에도 불구하고 이라크는 1988년 8월 20일까지 백만여 명의 사상자를 내며 전쟁을 계속한다. 2003년 마지막 포로가 교환되었다. 이란-이라크 전쟁은 지역과 국제 정세에 영향을 주었다.
시작~종료 1980년 9월 22일 ~ 1988년 8월 20일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16
문서 정보
- 시작 ~ 종료
- 1980년 9월 22일 ~ 1988년 8월 20일
- 날짜
- 1980년 9월 22일 ~ 1988년 8월 20일 (7년 333일)
- 결과
- 전쟁 이전으로 되돌림 (Status quo ante bellum), UN 결의 619에 기초한 UN 이란-이라크 전쟁 감시 위원회의 감찰하에 이루어짐.
- 위치
- 32.0000, 53.0000
이란-이라크 전쟁은 1980년 9월 22일 이라크 사담 후세인이 이란을 침공하며 발생했다. 주 목표는 샤트알아랍강 획득 및 이란혁명정권의 타도였다. 이라크는 선전포고 없이 이란을 공격했지만 전쟁을 진척하지 못하고 이란에게 격퇴된다. 유엔 안보리의 휴전 명령에도 불구하고 이라크는 1988년 8월 20일까지 백만여 명의 사상자를 내며 전쟁을 계속한다. 2003년 마지막 포로가 교환되었다. 이란-이라크 전쟁은 지역과 국제 정세에 영향을 주었다.
배경
양국은 국민 대다수가 이슬람교도이나 이란은 그 중 80% 이상이 시아파고 이라크는 시아파와 수니파로 2등분되어있으나 전통적으로 수니파가 상대적으로 다수인 시아파를 지배함으로써 양국은 과거부터 갈등을 겪고 있었고 이란 혁명 성공으로 강경 급진 시아파가 집권함으로써 양국 관계가 격화되기 시작했다.
또한 양국은 제각기 이슬람 정통 계승과 페르시아 상속자임을 자처하며 호르무즈 해협 3개 도서(島嶼)와 샤트알아랍 강 수로의 영유권을 주장, 역사적 분쟁을 겪어오고 있었다.
이란 혁명 이후 이란의 시아파 정부는 이라크가 후제스탄 지역 반정부 세력을 지원하고 있으며 이라크 내 시아파를 박해한다고 비난하는 등 설전을 했고 이라크는 내정 간섭 중지를 경고함과 동시에 이란이 이라크 내 반정부 세력을 지원하고 있다고 맞받아치는 등 긴장이 고조되기 시작했고 국경에서 무력 충돌로 확대됐다.
여기에 이란의 중동에 대한 이슬람 혁명 파급기도와 팔레비 왕조의 붕괴로 중동 제일의 군사강국 지위를 점한 이라크의 제국주의적 팽창 정책 또한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
중동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친미정권으로 이스라엘과 함께 미국 중동정책의 거점이던 샤 팔레비 이란 왕조가 이란 혁명으로 1979년에 붕괴하며 미국과 서방국가의 영향력이 크게 감소했고 이는 중동 지역에 일시적인 힘의 공백을 가져왔다.
서방 국가들은 이란에 등장한 이슬람정권의 영향으로 중동 전역에 반미, 반서방 이슬람 원리주의 물결이 일것을 우려하고 있었다.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 전통적으로 이란과 대립관계에 있던 이라크에 접근하여 후세인 정권에게 막대한 외교, 경제, 군사적 지원을 시작했다.
영국과 프랑스는 전쟁 초기부터 이라크에 상당량의 무기를 팔았고 미국은 후세인정권의 무차별적인 화학무기 사용과 민간인 학살도 묵인하였다.
전개
이란은 이란 인질 사건으로 서방의 경제봉쇄를 당할 위기에 놓였고 이란 정규군 또한 혁명 과정에서 전력이 약화된 것을 계기로 이라크는 1975년 체결된 양국간 국경 조약을 불평등 조약이라고 선언, 9월 17일 이의 폐기와 3개 도서 및 수로에 대한 주권을 선언하고 9월 22일 이란에 대한 전면 침공을 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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