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귀
이귀(李貴, 1557년 ∼ 1633년)는 조선의 문신이다. 자는 옥여, 호는 묵재, 본관은 연안(延安)이다. 이이·성혼의 제자이며, 임진왜란 때에 삼도 소모관·삼도 선유관으로 소·말·식량·군졸 등을 징발하여 도체찰사 유성룡에게 수송했다. 1603년 선조 때 문과에 급제하여 형조좌랑·안산 군수·배천 군수 등을 지냈다.
출생 1557년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전 11:47
문서 정보
- 출생
- 1557년
- 출생일
- 1557년
- 사망일
- 1633년
- 국적
- 조선
- 경력
- 삼도 소모관, 삼도 선유관, 형조좌랑, 안산 군수, 배천 군수, 호위대장, 이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 사헌부대사헌, 좌찬성, 병조판서, 판의금부사, 이조판서
이귀(李貴, 1557년 ∼ 1633년)는 조선의 문신이다. 자는 옥여, 호는 묵재, 본관은 연안(延安)이다. 이이·성혼의 제자이며, 임진왜란 때에 삼도 소모관·삼도 선유관으로 소·말·식량·군졸 등을 징발하여 도체찰사 유성룡에게 수송했다. 1603년 선조 때 문과에 급제하여 형조좌랑·안산 군수·배천 군수 등을 지냈다.
1614년(광해군 6년) 8월 27일 위성원종공신 1등(衛聖原從功臣)에 책록되었다.
1616년 이귀는 역모 사건에 연루되어 이천에 유배되었다가 1619년 유배에서 풀려났다. 이런 상황에서 능양군(후의 인조)와 인척 관계에 있었던 신경진과 구굉 등이 이서와 반정을 먼저 계획하였고, 이귀는 이 계획에 뜻을 같이 하게 되었다. 1623년 3월 13일 밤 이귀는 김류, 최명길 등과 함께 광해군을 폐위시키고 능양군(후의 인조)을 추대하는 반정을 일으켰다. 인조반정이 성공한 후 총 53명이 정사공신(靖社功臣)에 책봉되었는데, 이귀는 일등공신으로 이름을 올렸다.1 이후 연평군(延平君)에 봉작되고 후에 부원군으로 진봉되었다. 이괄의 난 당시 검찰사로 인조를 호위하였다.
이후 호위대장(扈衛大將)이 되었다가 이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 사헌부대사헌 등을 역임하였다. 1627년 정묘호란 때 왕을 모시고 강화도로 피란하였으며, 이때 청(淸)과의 화의를 주장하다가 대간의 탄핵을 받았다. 이후 좌찬성 등을 거쳐 연평부원군(延平府院君)에 봉해졌다. 1628년(인조 6) 유효립에 난 진압을 도운 공로로 영사원종공신 1등(寧社原從功臣一等)에 책록되었다. 1629년 병조판서가 되었다가 파직되었으며 복직 후 지경연, 1631년 판의금부사, 이조판서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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