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수
이공수(李公壽, 1059년 ~ 1137년)는 고려 중기의 문신, 정치인이며 본관은 인천이다. 초명은 수(壽). 자는 원로(元老).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예(預)의 아들이며 재상을 지낸 최유선(崔惟善)의 외손자이다.
출생 1059년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전 11:45
이공수(李公壽, 1059년 ~ 1137년)는 고려 중기의 문신, 정치인이며 본관은 인천이다. 초명은 수(壽). 자는 원로(元老).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예(預)의 아들이며 재상을 지낸 최유선(崔惟善)의 외손자이다.
이자겸, 이자의, 고려 중기의 문인 이인로의 일족이며, 최충은 그의 외증조부였다. 예종, 인종 등을 비로한 고려 왕실의 외척이었으나 일을 공정하게 처리하였으며, 이자겸의 난 토벌에 참여한 공로로 추충위사동덕공신(推忠衛社同德功臣)에 책록되었다.
생애
어린 시절
상서우복야 이자상의 손자이며 아버지는 평장사(平章事) 예(預)이고 어머니 해주 최씨는 문하시중 최유선의 딸이며 최충의 손녀였다. 문종의 장인 이자연의 종손이다. 이자겸, 이자의와는 6촌간이었다. 또한 그의 삼촌 이류의 증손자이자 당조카 백선의 아들이 이인로였다.
관료 생활
선종 때인 1086년에 과거에 급제하여 궁전고판관 등 여러 벼슬을 거쳐 직한림원(直翰林院)이 되었다. 그 뒤 첨사부주부, 우습유 지제고, 좌습유(左拾遺)를 거쳐 전중내급사로 서경유수판관이 되었다. 예종이 서경에 임하였을 때 백성을 잘 다스렸다 하여 칭찬을 받았고, 왕이 개경으로 환도할 때 왕으로부터 호종할 것을 명받았으나 스스로 사양하였다.
그 뒤 예부원외랑(禮部員外郞)을 거쳐 형부원외랑, 좌사낭중, 비서소감, 어사중승 등을 한 후에 병부시랑이 되었다. 병부시랑으로 재직하면서 군사를 선발하는 데 14년 동안 조금도 차별이나 사심없이 처리하여 잘못이 없었다. 그 뒤 우간의대부, 국자감대사성 겸 직문하성, 우산기상시 동수국사, 서북면병마사 등 여러 관직을 거쳐 승진하여 공부상서가 되었다. 인종이 즉위하면서 검교사도 수사공 참지정사(檢校司徒守司空參知政事)로 발탁되었다가 중서시랑 평장사가 되었다.
생애 후반
그 뒤 이자겸이 난을 일으켰으나 가담하지 않고 토벌에 참여하였다. 1126년(인종 4) 이자겸의 난이 진압된 뒤에 판사 감수국사(判吏部事 監修國史)에 제수되었으며, 이듬해 문하시중으로 지공거(知貢擧)가 되어 를 주관하여 왕좌재(王佐材) 등 33인을 선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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