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득실
윤득실(尹得實, 1768년 - 1805년)은 조선 후기의 문신, 관료였다. 경기도 수원 출신으로, 그의 집터가 수원행궁에 편입되어 그는 충청도 천안으로 내려가야 했다. 본관은 해평이고 자는 성보(誠甫)이다.
출생~사망 1768년 ~ 1805년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14
윤득실(尹得實, 1768년 - 1805년)은 조선 후기의 문신, 관료였다. 경기도 수원 출신으로, 그의 집터가 수원행궁에 편입되어 그는 충청도 천안으로 내려가야 했다. 본관은 해평이고 자는 성보(誠甫)이다.
생애
1768년 경기도 수원부 수원읍에서 윤발과 현감 이장(李樟)의 딸 전주이씨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 전주이씨는 현감을 지내고 증 승정원 좌승지에 추증된 이장의 셋째 딸이었으나, 서녀였다. 효령대군파 파성군파 족보에는 서녀로 나타난다. 어머니 전주이씨는 효령대군의 후손으로, 효령대군의 12대손이며, 파성군 철동의 8대손, 임진왜란 때의 장군 이경록의 5대손이다.
셋째 아들이자 바로 윗 형 윤득길(尹得吉)은 아들이 없던 삼촌 윤침(尹沈)의 양자로 갔다. 그는 조선 선조 때의 형제 정승 윤두수, 윤근수 형제의 후손이었고, 도재 윤흔의 5대손이었다. 고조부 윤취지는 음서 제도로 출세하여 관직 이 가의대부 동지중추부사에 이르렀고, 할아버지 윤세겸은 음서제도로 출사하여 지방관을 역임하고 종2품 가선대부 동지돈녕부사에 이르렀다. 그러나 윤득실의 아버지 윤발은 서자였고, 관직이 없었다. 후에 그의 집이 행궁에 편입되면서 아버지 윤발은 잠깐 낭청직을 지내기도 했다. 그러나 1794년 자리가 없어 다시 관직에 임용되지 못했다. 아버지 윤발에게 후일 호조참의가 추증된 것은 그의 아들 윤취동의 신원 상소 때문이었고, 다시 비서원승이 증직된 것은 손자 윤웅렬의 출세로 내려진 증직이었다.
수원부에 살던 그의 집이 수원 행궁터로 편입되면서 그는 충청남도 천안군으로 내려오게 되었다. 1790년(정조 14년) 6월 7일 수원부 행궁에 집터가 편입된 사대부들을 상대로 유생과 무사들을 시취할 때 그는 고시(古詩) 부문에서 삼상, 삼중, 삼하로 등급을 나눌 때 삼하 등급이었고 즉석에서 선자(扇子) 2개를 상물로 하사받았다. 그해 12월 11일 정조가 다시 수원부 제술을 주관할 때 응시, 이때 참여한 무사와 유생들을 시상할 때 그는 미 7두를 하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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