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 뵐러
오토 폰 뵐러(Otto poon Wöhler, 1894년 7월 12일 ~ 1987년 2월 5일)는 독일의 군인으로, 최종 계급은 독일 국방군의 보병 대장이다. 제2차 세계 대전 후, 뉘른베르크 부속 재판의 국방군 최고 사령부 재판에서 징역 8년 판결을 받았다.
출생~사망 1894년 7월 12일 ~ 1987년 2월 5일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15
문서 정보
- 출생 ~ 사망
- 1894년 7월 12일 ~ 1987년 2월 5일
- 출생
- 1894년 7월 12일
- 사망
- 1987년 2월 5일
- 성별
- 남성
- 국적
- 독일
- 직업
- 군인
- 소속
- 독일 국방군
- 위치
- 52.4920, 9.8567
오토 폰 뵐러(Otto poon Wöhler, 1894년 7월 12일 ~ 1987년 2월 5일)는 독일의 군인으로, 최종 계급은 독일 국방군의 보병 대장이다. 제2차 세계 대전 후, 뉘른베르크 부속 재판의 국방군 최고 사령부 재판에서 징역 8년 판결을 받았다.
생애
어린 시절
니더작센주 부르크베델 (Burgwedel)의 부유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직업 군인을 선택해 1914년 소위 (Leutnant) 로 임관하였다.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해, 제167 보병 연대에서 대대장을 맡았으며, 세 번의 부상으로 많은 훈장을 수여 받았다.
전후에도 군에 남아 바이마르 공화국군 (Reichswehr)에서 연대 부관을 맡았고, 1923년 중위 (Oberleutnant), 1925년 대위 (Hauptmann) 로 승진하고, 1926년 참모 교육과정을 수료하였다. 1932년 소령 (Major), 1935년 중령 (Oberstleutnant), 1938년 대령 (Oberst)으로 승진해 베를린의 국방군대학 참모가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에발트 폰 클라이스트가 이끄는 제14군에서 작전주임참모를 맡아 폴란드 침공에 참여하였다. 1940년 프랑스 공방전에서 제17군단 참모장, 그 해 10월 제11군 참모장이 되었으며, 1941년 9월부터 제11군 사령관이 된 에리히 폰 만슈타인을 보좌하였다. 1942년 소장 (Generalmajor), 중장 (Generalleutnant)으로 승진했으며, 1943년 크림반도를 제압한 전공을 인정 받아 크림실트를 수상하였다. 1942년 4월 중앙군 집단 (Heeresgruppe Mitte, 사령관 귄터 폰 클루게)의 참모장이 되었다.
1943년 북부 집단군 (Heeresgruppe Nord) 에 속하는 제I군단 (I. Armeekorps) 사령관에 임명되었고, 같은 해 6월에 보병 대장으로 승진하였다. 같은 해 1월에는 붉은 군대에게 포위된 (Welikije Luki) 구출 작전에서의 전공에 의해, 8월에 (Ritterkreuz des Eisernen Kreuzes) 훈장을 받았다. 같은 달, 새롭게 편성된 제8군 (8. Armee, 구 (舊) 켐프 전투 부대)의 사령관에 임명되었다. 에서 까지 후퇴전을 지휘했으며, 당시 참모장 은 훗날 북대서양 조약 기구 중부 유럽 육군 총사령관이 되었다. 1944년 8월 (Jassy–Kishinev Offensive) 에서는 포위된 제8군의 일부 밖에 구출하지 못했으나, 같은 해 12월, 헝가리에서 사령관에 임명되었다. 1944년 11월에는 (Battle of Debrecen) 에서의 전공에 의해 백엽기사철십자장 훈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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