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석린
신석린(申錫麟, 일본식 이름: 平林麟四朗히라바야시 린시로, 1865년 1월 9일 ~ 1948년 2월 14일)은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의 관료이며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도 지냈다. 1919년 3·1 운동 때는 이를 진압, 시위대 해산을 독려하던 단체인 자제단의 대구지부 창립에 참여했다. 구한 말 개화파 정치인으로 활동하다가 을사조약 이후 1906년에는 웅천군 군수, 1908년에는 창원부 부윤을 역임했다. 한일합방 후 경상남도 참여관, 경상북도 참여관, 1921년에 강원도 지사, 1923년 중추원 참의, 1929년에 충청남도 도지사 등을
출생~사망 1865년 1월 9일 ~ 1948년 2월 14일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12
문서 정보
- 출생 ~ 사망
- 1865년 1월 9일 ~ 1948년 2월 14일
- 본명
- 신석린
- 로마자 표기
- Shin Seok-rin
- 출생
- 1865년 1월 9일
- 사망
- 1948년 2월 14일
- 성별
- 남성
- 국적
- 대한제국, 일제강점기
- 경력
- 웅천군 군수, 창원부 부윤, 경상남도 참여관, 경상북도 참여관, 강원도 지사, 중추원 참의, 충청남도 도지사
- 직업
- 관료
- 소속
- 조선총독부 중추원
신석린(申錫麟, 일본식 이름: 平林麟四朗히라바야시 린시로, 1865년 1월 9일 ~ 1948년 2월 14일)은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의 관료이며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도 지냈다. 1919년 3·1 운동 때는 이를 진압, 시위대 해산을 독려하던 단체인 자제단의 대구지부 창립에 참여했다.
구한 말 개화파 정치인으로 활동하다가 을사조약 이후 1906년에는 웅천군 군수, 1908년에는 창원부 부윤을 역임했다. 한일합방 후 경상남도 참여관, 경상북도 참여관, 1921년에 강원도 지사, 1923년 중추원 참의, 1929년에 충청남도 도지사 등을 지냈다. 호는 애사(藹史)이며 본적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원서동이다. 본관은 평산이다.
생애
초기 활동
한성부 출신으로 어릴 때는 한문을 수학했다. 1896년에 오사카시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등 일찍부터 일본을 오가며 개화파로 활동했다. 일본 정치인 하야시 곤스케와는 친밀한 사이였다. 그뒤 1897년 서재필, 양기탁, 윤치호, 안창호 등과 함께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 등에 참여하였다.
일본 정치인 하야시 곤스케와 친밀한 점이 문제가 되어 곤욕을 당했다. 이 때문에 하야시가 공사로 대한제국에 파견되었을 때, 민영기의 추천으로 에서 근무하며 일본공사관과 사이를 오가면서 총애를 받았다. 정치적인 조작 사건에 휘말려 귀양을 가기도 했으나, 일본의 세력이 강해진 1906년에는 군수, 1908년에는 부윤을 맡는 등 지방관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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