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암
시암(태국어: สยาม 사얌[*]) 또는 섬라국(暹羅國)은 아유타야 시대부터 라타나코신 시대까지의 태국이다. 1936년 이후 국호를 시암에서 타이로 바꾸면서 오늘날의 타이 왕국이 되었다.
건국~멸망 1350년 ~ 1939년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08
문서 정보
- 건국 ~ 멸망
- 1350년 ~ 1939년
- 정치체제
- 군주제
- 왕1350년 ~ 1369년1448년 ~ 1488년1548년 ~ 1564년
- 라마티보디 1세(초대), 볼로마토라이로카나토, 마하 차크라패드, 나레수안, 라마티버디 3세, 보로마라차 3세, 보로마라차 4세, 라마 1세, 라마 2세, 라마 3세, 라마 4세, 라마 5세, 라마 6세, 라마 7세(말대)
- • 아유타야 시대
- 1350년 ~ 1767년
- • 톤부리 시대
- 1767년 ~ 1782년
- • 라타나코신 시대
- 1782년 ~ 1932년
- 위치
- 태국
- 공용어
- 태국어
- 민족
- 타이인
- 국교
- 상좌부 불교
- 현재 국가
- 태국
- 위치
- 13.7500, 100.5167
시암(태국어: สยาม 사얌[*]) 또는 섬라국(暹羅國)은 아유타야 시대부터 라타나코신 시대까지의 태국이다. 1936년 이후 국호를 시암에서 타이로 바꾸면서 오늘날의 타이 왕국이 되었다.
역사
아유타야 시대 (1351년 ~ 1757년)
시암의 첫 번째 왕조는 아유타야 왕조이다. 아유타야 왕조는 중국과 인도, 유럽을 잇는 중간에 위치하는 지리적인 이점을 살려 왕가를 중심으로 독점 무역을 했다. 주로 중국에 쌀을 수출하여 국력을 기르고, 조선, 일본, 류큐국 등과 안남 등의 동아시아 국가, 동남아시아의 크고 작은 섬들, 아랍, 페르시아나 서양과 활발하게 무역을 하여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이 부를 바탕으로 아유타야에서는 당시 번영하고 있던 크메르 문화를 흡수하면서, 중국, 유럽, 페르시아 등의 문화의 영향을 받은 독자적이고 화려한 문화가 꽃피게 되었다. 이 왕조의 첫째 왕 라마티보디 1세는 상좌부 불교를 국교로 제정하였으며 힌두교 법률서와 태국의 전통 풍습에 기초해 다르마샤스트라라는 법률을 제정하였다. 이후 14세기말까지 아유타야 왕조는 동남아시아 최대의 세력으로 성장하였지만, 동남아 지역을 완전히 압도할 만큼의 인구는 보유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당시 쇠퇴하고 있던 크메르 왕조에 세력을 확장하고 있던 베트남 세력에 대항하기 위해, 라마티보디는 말년 1362년 앙코르 왕조를 공격해 아유타야의 영토의 확장을 꾀하였다. 그러나 아유타야는 앙코르를 완전히 장악하지 못했다. 15세기에는 말레이 반도의 말라카 왕국이 아유타야의 고민거리가 된다. 말레이 반도에서는 말라카나 탄브라린가 이남의 말레이 반도 여러 도시가 15세기 초기부터 으로 개종 하게 되어, 독립을 선언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아유타야는 말레이 반도 남부를 잃지만, 말레이 반도 북부를 계속 장악하여 고급품을 거래해온 온 중국 상인에 의해 국내의 경제는 활기를 유지하게 된다. 한편, 서쪽의 는 지역의 패권을 노리며, 16세기경부터 집요하게 아유타야를 침략하여 아유타야의 골칫거리가 되게 된다. 버마 의 군주 은 1569년에 아유타야 왕 마힌트라티랏을 패망시켰으나 에 의해서 아유타야는 재건되었다. 이후 가 국력을 축적하게 되면서 아유타야는 다시 버마의 침략에 골머리를 앓는다. 결국 1767년에 에 의해 아유타야 왕조는 멸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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