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숙오
손숙오(孫叔敖, ? ~ ?)는 중국 춘추 시대 초나라의 관료이다. 성은 미(羋), 씨는 위(蔿)이며 휘는 오(敖) 또는 애렵(艾獵)이고 자는 손숙(孫叔)이다. 위고(蔿賈)의 아들이며, 위오(蔿敖) 또는 위애렵(蔿艾獵)이라고도 한다.
출생~사망 기원전 630년 ~ 기원전 593년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14
문서 정보
- 출생 ~ 사망
- 기원전 630년 ~ 기원전 593년
- 본명
- 미오(羋敖), 미애렵(羋艾獵)
- 성별
- 남성
- 국적
- 초나라
- 경력
- 영윤
- 직업
- 관료
손숙오(孫叔敖, ? ~ ?)는 중국 춘추 시대 초나라의 관료이다. 성은 미(羋), 씨는 위(蔿)이며 휘는 오(敖) 또는 애렵(艾獵)이고 자는 손숙(孫叔)이다. 위고(蔿賈)의 아들이며, 위오(蔿敖) 또는 위애렵(蔿艾獵)이라고도 한다.
사적
머리가 둘 달린 뱀
어느 날, 어린 손숙오는 놀러 나갔다가 머리가 둘 달린 뱀을 발견하였다. 손숙오는 뱀을 죽이고 땅에 묻은 다음 집에 돌아가 엉엉 울었다. 어머니가 그 이유를 물어보니, 이렇게 말하였다.
어머니가 뱀은 어떻게 되었는지 물어보니, 손숙오는 다른 사람이 볼까봐 죽이고 땅에 묻었다고 답하였다. 어머니가 말하였다.
어진 정치
손숙오는 장왕 때 영윤(令尹; 초나라의 재상) 우구자의 천거로 후임 영윤이 되었다. 백성을 교화시켜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화합하게 만들었고, 이로 인하여 정치는 느슨하였지만 간신도 도둑도 생기지 않았다. 진(晉)나라의 사회(士會)는 손숙오의 치세를 크게 칭송하였다.
어느 날, 장왕이 화폐가 가볍다고 생각하여 크고 무겁게 만들었다. 백성은 이를 불편하게 여겨 쓰지를 않았고, 시령(市令; 시장을 감독하는 관리)이 이를 손숙오에게 보고하였다. 손숙오는 장왕에게 간언하였다.
장왕은 이를 허락하였고, 명령을 내린 지 사흘 만에 시장은 예전처럼 회복되었다.
초나라 백성은 습속이 비거(庳車; 수레바퀴가 작고 낮은 수레)를 좋아하였는데, 장왕은 비거는 말이 끌기에 불편하다고 여겨 법령을 내려 이것을 높이려 하니, 손숙오가 간언하였다.
장왕이 이를 허락하니, 반 년이 지나 백성은 모두 자발적으로 수레를 높였다.
사후
손숙오는 죽기 전에 아들에게 말하였다.
과연 손숙오가 죽으니, 장왕은 손숙오의 공을 기려 많은 상을 내려주려 하였다. 손숙오의 아들은 아버지의 말대로 침구 땅만 받았고, 이후 영윤이 되었다.
훗날 초나라가 혼란에 빠졌을 때, 침구는 너무 토지가 척박하였기 때문에 아무도 탐내지 않아 손숙오의 집안은 항상 정쟁을 피할 수 있었다. 또 초나라가 오나라의 침략을 받아 멸망하기 직전에 다다랐을 때, 침구는 땅의 이름이 불길하였기 때문에 오나라 군사들이 쳐들어오는 일이 없었다. 이로 인하여 손숙오의 자손은 크게 번성하였다.
출전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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