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남동
서남동(徐南同, 1918년 7월 5일 ~ 1984년 7월 19일)은 한국기독교장로회 목사이자, 민중신학 선구자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본관은 이천 서씨. 호는 죽재(竹齋)이다.
출생~사망 1918년 7월 5일 ~ 1984년 7월 19일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전 11:56
문서 정보
- 출생 ~ 사망
- 1918년 7월 5일 ~ 1984년 7월 19일
- 본명
- 서남동
- 로마자 표기
- Seo Nam-dong
- 출생
- 1918년 7월 5일
- 사망
- 1984년 7월 19일
- 성별
- 남성
- 국적
- 대한민국
- 직업
- 목사
- 소속
- 한국기독교장로회
서남동(徐南同, 1918년 7월 5일 ~ 1984년 7월 19일)은 한국기독교장로회 목사이자, 민중신학 선구자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본관은 이천 서씨. 호는 죽재(竹齋)이다.
생애
일본유학
서남동은 전라남도 신안군 자은면 유천리의 개신교 집안에서 출생했다. 그의 부모는 전라남도 목포시에서 활동하던 미국 남장로교회 선교사들의 전도로 기독교를 접했는데, 서남동도 부모의 영향으로 기독교인이 되었다. 기독교 계열 학교인 목포영흥학교와 전주신흥학교1에서 공부했으며, 1936년 일본 도시샤대학 신학부에 진학했다. 외국어 공부과정인 예과 2년과 4년제 본과에서 공부하던 신학생 시절 서남동은 재일 한국인들의 비참한 삶을 보면서 민중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당시 재일 한국인들은 일본제국의 식민지 수탈을 피해 일본에 온 사람들이었는데, 일본 사람이 경영하는 공장이나 논밭에서 일하면서 겨우 먹고 사는 처지였다. 이를 보면서 서남동은 자연히 민중들과 함께 살았던 갈릴래아의 예수를 발견하게 된다. 교회사학자 김수진에 의하면 서남동은 목포에서 목회하던 박연세 목사에게도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박연세 목사가 일본제국의 천황 신격화에 반대하여 재판정에 서서도, 그리스도를 왕으로 믿는 기독교 신앙에 따라 그리스도가 보다 높다고 주장하는 의연함을 보면서 감동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박목사가 순교하자 시신을 수습하고 가족들에게 연락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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