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해관 전투
산해관 전투 또는 일편석 전투는 1644년 5월 27일(음력 4월 22일)에 만리장성의 산해관에서 섭정왕 도르곤이 이끄는 팔기군-투항한 오삼계 연합군과 이자성의 농민군이 격돌한 전투이다. 결과적으로 이자성 군이 크게 패하고 청군이 북경에 입성하면서 중화의 패권이 청으로 넘어가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도르곤은 빠르게 남하하여 중원 대부분 지역들을 점령하였고, 명나라는 남명으로 이어져 항쟁을 이어가다가 결국 멸망한다.
시작 1644년 5월 27일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08
산해관 전투 또는 일편석 전투는 1644년 5월 27일(음력 4월 22일)에 만리장성의 산해관에서 섭정왕 도르곤이 이끄는 팔기군-투항한 오삼계 연합군과 이자성의 농민군이 격돌한 전투이다. 결과적으로 이자성 군이 크게 패하고 청군이 북경에 입성하면서 중화의 패권이 청으로 넘어가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도르곤은 빠르게 남하하여 중원 대부분 지역들을 점령하였고, 명나라는 남명으로 이어져 항쟁을 이어가다가 결국 멸망한다.
배경
명나라의 정치 기강이 무너지고, 북쪽에서는 외세의 침입이 점점 거세지며, 명나라는 점차 멸망의 길을 걷고 있었다. 한편 명나라 황제들은 산해관의 전략적인 위치의 중요성을 인지하여 자주 이 곳에서 군사 훈련을 벌였는데, 가끔씩은 거의 40,000여 명에 달하는 대군들이 모이기도 하였다. 홍타이지가 새롭게 황제의 자리에 오른 이후, 청나라는 점점 명나라에 적대적인 행보를 보이기 시작하였고, 결국에는 1642년 초에 명나라 북부 국경의 주요 군사 요새들이 대부분 청나라에 떨어지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명나라의 수도였던 베이징과 청나라 사이에는 오삼계가 이끄는 군대만이 유일한 대규모 방패막으로 남게 되었다. 1642년 여름, 청나라 군대는 만리장성을 넘어 명나라 북부 지방들을 점거하기 시작하였고, 1643년 5월에 철수하기 전까지 약 7달동안 약탈을 계속하였다. 그들은 돌아갈 때 수많은 포로들과 노획한 전리품들을 챙겨갔고, 이 과정에서 그 어떠한 주요 군사적 제지도 받지 않았다.
1643년 9월, 홍타이지는 후계를 지명하지 않고 세상을 떠났다. 이후 홍타이지의 두 아들이었던 아이신기오로 호오거와 도르곤 사이에서 일어날 분쟁을 막기 위해서, 조정 대신들은 당시 5살이었던 순치제에게 황위를 맡겼다. 이후 도르곤과 아이신기오로 지르가랑에게 부관직을 맡겨 내치를 안정시키게 하였다. 하지만 지르가랑이 정치적 식견이 부족했던 탓에, 청나라의 정치는 도르곤에 의해 좌지우지되었다.
베이징의 함락
도르곤과 그의 부하들이 북쪽에서 명나라를 무너뜨릴 계획을 짜고 있는 동안, 명나라 내부에서도 점차 분열의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1644년 2월, 반란군의 지도자 이자성이 시안에서 순나라를 건국하고 황제로 즉위하였으며, 이후 3월에는 산시성의 타이위안을 점령하였다. 반란군의 진격에 불안을 느낀 명나라의 숭정제는 4월 5일에 칙령을 내려 제국 전역에 있는 군사령관들에게 자신을 도와줄 것을 호소하였다. 숭정제는 군대의 충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필사적으로 힘썼는데, 이때 오삼계를 포함한 4명의 장군들에게 귀족 작위를 수여하였다. 당시 이 4명의 장군들 중 유일하게 베이징에 있던 당통 장군은 수도의 방비를 강화하고 베이징으로 들어오는 핵심 요새인 거용관을 지키러 떠났다. 하지만 4월 22일, 명나라 조정은 당통 장군이 전날 이자성의 반란군에게 이미 항복했으며, 반란군은 베이징에서 65킬로미터 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자성과 그의 반란군들은 4월 23일에 베이징의 교외 지역에 도달하였다. 그들은 대규모 약탈을 하는 대신에, 자신에게 항복한 장군들을 숭정제에게 보내 항복할 것을 권유하였지만 숭정제가 이를 거부하자 24일에 베이징을 공격해 함락시키며 도성 내부로 진입하였으며, 숭정제는 자금성 뒤쪽 언덕에서 목을 매 자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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