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포위전 (1673년)
본 포위전은 네덜란드 전쟁 중인 1673년 11월에 벌어진, 쾰른 선제후국의 본에 대한 포위전이다.
시작~종료 1673년 11월 3일 ~ 1673년 11월 12일마지막 수정 2026. 10. 16. 오후 4:45
본 포위전(본 포위전, 독일어: Belagerung von Bonn)은 네덜란드 전쟁 중인 1673년 11월에 벌어진, 쾰른 선제후국의 본에 대한 포위전이다.
배경과 경과
네덜란드 전쟁 당시 프랑스 왕국과 동맹을 맺고 있던 쾰른 선제후국에게 본은 중요한 요새였다. 가톨릭 신성 로마 황제 레오폴트 1세는 개신교국인 네덜란드 연방 공화국(네덜란드)을 지지해야 할지 망설이고 있었으나, 프랑스가 독일의 베젤, 라인베르크, 엠메리히, 레스, 조에스트, 헥스터, 그리고 알자스 지방의 콜마르를 점령하고, 나아가 트리어 선제후국의 카를 카스파르 폰 데어 라이엔이 다스리던 수도 트리어까지 점령하게 되자, 레오폴트 1세는 친프랑스 정책을 포기했다.
이처럼 프랑스는 독일의 도시들, 에스파냐령 네덜란드, 그리고 네덜란드까지 침공했으나, 황제, 에스파냐, 네덜란드가 처음 겨냥한 목표는 그것들이 아니라(프랑스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본이었다. 몇 차례 패배한 뒤 프랑스군은 이미 철수를 시작했지만, 오라녀 공 빌럼 3세가 이끄는 네덜란드군, 에스파냐군, 그리고 라이몬도 몬테쿠콜리가 이끄는 제국군은 라인강을 가로지르는 프랑스군의 보급선을 끊기 위해 본으로 진군했다.
막시밀리안 하인리히 폰 바이에른 쾰른 선제후 겸 대주교는 수도인 본에서 쾰른으로 도피했다. 1673년 11월 3일, 그라나 후작 가 이끄는 제국군 선발대가 본 근처의 에 도착했다. 8일에는 본 성에 대한 포격이 시작되었고, 라비용 준장(Ravillon)과 도시 사령관 가 이끄는 본 주둔군은 12일에 항복했다. 두 사람은 그대로 퇴각하는 것이 허용되었으며, 대포 2문씩을 각각 와 로 옮겼다. 본의 새 지휘관은 그라나 후작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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