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어 전쟁
보어 전쟁(영어: Boer Wars) 또는 영국-보어 전쟁(영어: Anglo-Boer Wars)은 아프리카에서 종단 정책을 추진하던 대영제국과 당시 남아프리카지역에 정착해 살던 네덜란드계 보어족 사이에 일어난 전쟁이다. 당시 영국의 식민지 팽창에 맞서 일어난 아프리카너들의 저항 중 대표적인 사례이다. 아프리카에서 벌어진 갈등 중에 백인들 간의 갈등에서 발발된 전쟁이었다는 특징이 있다.
시작 1899년 10월 11일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11
보어 전쟁(영어: Boer Wars) 또는 영국-보어 전쟁(영어: Anglo-Boer Wars)은 아프리카에서 종단 정책을 추진하던 **대영제국**과 당시 남아프리카지역에 정착해 살던 네덜란드계 보어족 사이에 일어난 전쟁이다. 당시 영국의 식민지 팽창에 맞서 일어난 아프리카너들의 저항 중 대표적인 사례이다. 아프리카에서 벌어진 갈등 중에 백인들 간의 갈등에서 발발된 전쟁이었다는 특징이 있다.
배경
보어인들은 남아프리카 지역에 이주해 온 네덜란드계 백인들이었다. 그러던 중 1795년 영국은 프랑스혁명 중에 네덜란드로부터 보어의 땅을 빼앗았다.1 이로인해 1857년경에는 남아프리카에서 유럽인이 통치하는 정치적 통합체가 8개가 존재하게 된다. 오라녜 자유국, 트랜스발의 남아프리카 공화국, 라이덴버그, 위트레흐트, 죠우판스버그의 5개는 보어인들의 국가였고, 나머지 3개 지역의 케이프식민지, 나탈 , 영국령 카피라리아는 영국인들이 통치하였다. 영국 정부의 노력으로 1858년 라이덴버그와 위트레흐트가 통합되고 죠우판스버그도 통합을 수락하면서 1860년에는 조그만 공화국들이 남아프리카공화국에 통합되었다. 그러나 케이프 식민지의 조지 그레이 총독은 남아프리카의 연방화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를 담은 보고서를 제출하고 영국정부의 응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케이프 식민지 의회가 연방참여를 위한 오랜지 자유국의 요구를 우호적으로 받아들일 것을 요구했다.2 이런 독단적인 결정으로 재정 적자를 걱정하던 영국 식민지 사무소의 상관들은 분노했으며 결과적으로 영국 정부의 통합 정책은 난관에 부딪힌다.3
나탈 지역의 경우 영국 정부에 의해 보어인들의 분노를 일으킨 사례이다. 영국 정부의 지배를 받고있던 보어인들은 남아프리카의 원주민들과 마찰을 일으키게 된다. 영국은 이주민들을 무시하는 정책으로 분쟁에 대한 부담을 줄이려 하였고 이는 보어인들이 혼란스러운 상황에 놓이게 하였다. 그리고 나탈에 있던 이주자들은 공화국 조직을 구성하였으나 영토 문제와 토지 분배에 대해 문제를 가지고 있었고 이로인해 영국 당국의 개입을 환영하게 되었다. 보어인들은 영국 정부와 영국 법률을 인정하는 한편 통치권을 유지한다는 타협안을 체결하였으나 영국의 약속 불이행으로 1845년 나탈은 합병되었다. 이로 인해 많은 보어인들은 실망하며 떠나게 되었다.2
영국과 보어인들의 관계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합병으로 더욱 악화되었다. 1877년 4월 정식으로 합병이 이루어지자 보어인들은 어느때 보다 더욱 불안해 하고 곤란해졌다. 1879년 12월 6000명 이상의 보어인들은 반데르폰테인에서 영국 당국과 협력한 자에 대한 반대, 합병 전 공화 국기게양 그리고 국민의회가 개최되어야 한다는 결정을 내린다. 그러나 빅토리아 여왕이 영국의 통치지역 포기를 강력하게 반대하였고 당의 박애주의자들이 아프리카인들이 보어인들의 억압과 통치를 받는 것을 반대하며 보어인들의 불만이 심화된다.2
결국 1880년 트랜스발 독립전쟁이 일어나면서 보어 전쟁이 발발한다.
보어 전쟁의 진행
- 제1차 보어 전쟁 (1880년~188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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