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이중
변이중(邊以中, 1546년~1611년)은 조선 중기의 문신, 군인이며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모집하는 소모사로 활동하였다. 전라도 장성 출신이며, 본관은 황주(黃州)이다. 자는 언시(彦時), 호는 망암(望庵)이다. 율곡 이이와 우계 성혼의 문인이며, 김자점의 장인이기도 하다. 전남 장성 출신.
출생~사망 1546년 ~ 1611년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17
문서 정보
- 출생 ~ 사망
- 1546년 ~ 1611년
- 출생
- 1546년, 전라도 장성
- 사망
- 1611년
- 성별
- 남성
- 국적
- 조선
- 경력
- 소모사
- 직업
- 문신, 군인
변이중(邊以中, 1546년~1611년)은 조선 중기의 문신, 군인이며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모집하는 소모사로 활동하였다. 전라도 장성 출신이며, 본관은 황주(黃州)이다. 자는 언시(彦時), 호는 망암(望庵)이다.
율곡 이이와 우계 성혼의 문인이며, 김자점의 장인이기도 하다. 전남 장성 출신.
생애
1546년 전라도 장성현 읍서면(현재의 장성읍) 장안리 장안(長安)부락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참봉 변택(邊澤)이며, 어머니는 함풍이씨(咸豊李氏)로 이조참판을 지낸 이긍(李兢)의 손녀딸이다. 일찍이 율곡 이이의 문하에서 글과 학문을 수학하였고, 또한 우계 성혼의 문하에서도 수학하였다.
1568년 증광시 생원을 거쳐, 1573년(선조 6년) 식년시 문과 병과에 급제하였다. 이후 1592년 6월 어천찰방에 임명되었으며, 1593년 (선조 26년) 2월에 소모사가 되어 죽산의 적둔을 공격하다가 크게 패하였다.
1593년 2월 12일 자신이 쓴 《총통화전도설(銃筒火箭圖說)》과 《화차도설(火車圖說)》 내용에 따라 화차 300량을 제조하여 그중 40대를 배편으로 경기도 고양 행주산성에 보내 분투하고 있던 권율 장군이 크게 승리하는데 힘을 보탰다. 이러한 와중에 백성들에게 수레 만들기를 독촉하고 소를 바치라 하여 백성들이 그 고통을 견디지 못하기도 하였다.
이후 그는 조도어사가 되어 양천산에 주둔해 있을 때 묘책을 써서 왜적을 물리치는 등 누차 전공을 세웠으며, 1593년 11월에 전라도 조도사로 군량미 수십만 석을 조달해 명나라 군대에게 대주었다.
이와 같이 임진왜란중 그는 전라도 소모사(의병을 모집하는 직책) 및 조도사가 되어 병마·군기·의병을 모집하고, 군량미를 조달하였으며, 수원에 주둔하여 기호의 적에 대비하였다.
1595년(선조 28년) 부호군, 1599년(선조 32년) 선산 부사, 1600년(선조 33년) 성균관 전적, 1601년(선조 34년) 비변사 낭청, 1603년 함안 군수로 부임하여 1605년 사직하고 고향 장성으로 돌아가 여생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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