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채
혜전 박종채(朴宗采, 1780년 ~ 1835년 11월 13일)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본래 이름은 박종간(朴宗侃)이었다. 1810년(순조 10년) 증광과 진사시(소과)에 합격해 연암 박지원의 아들로서 음서직인 경산 현감에 제수됐다. 대과에 급제는 하지 못했으나 평생 아버지의 유업인 북학 사상을 계승하고 그 저작들을 정리했으며 아버지와의 추억을 담은 글들도 다수 남겼다. 전주 류씨와 사이에 박규수, 박선수 형제를 두었고 장남 박규수가 잇따른 난을 평정한 공으로 이조참판, 이조판서에 이어 영의정에 추증됐다.
출생~사망 1780년 ~ 1835년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전 11:56
문서 정보
- 출생 ~ 사망
- 1780년 ~ 1835년
- 본명
- 박종간
- 로마자 표기
- Park Jong-chae
- 출생
- 1780년
- 사망
- 1835년 11월 13일
- 성별
- 남성
- 국적
- 조선
- 경력
- 경산 현감
- 직업
- 문신
- 배우자
- 전주 류씨
혜전 박종채(朴宗采, 1780년 ~ 1835년 11월 13일)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본래 이름은 박종간(朴宗侃)이었다.1 1810년(순조 10년) 증광과 진사시(소과)에 합격해 연암 박지원의 아들로서 음서직인 경산 현감에 제수됐다.23 대과에 급제는 하지 못했으나 평생 아버지의 유업인 북학 사상을 계승하고 그 저작들을 정리했으며 아버지와의 추억을 담은 글들도 다수 남겼다. 전주 류씨와 사이에 박규수, 박선수 형제를 두었고 장남 박규수가 잇따른 난을 평정한 공으로 이조참판, 이조판서에 이어 영의정에 추증됐다. 자(字)는 사행(士行)이다.
저서로 아버지 박지원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을 그린 《과정록》(過庭錄)이 있으며, 후손에 의해 《나의 아버지 박지원》4이란 제목으로 정식 출판됐다.
가족 관계
- 조부 : 박사유(朴師愈, 1703년 - 1767년)
- 처조부 : 유경양(柳敬養)
- 장인 : 유영(柳詠)
각주
Footnotes
-
서현경(2006), 「過庭錄」 異本 序文의 相異性에 관한 연구-전남대본「熱河日記」의 改作 및 朴宗采와 관련하여, 《열상고전연구》 23, 열상고전연구회, 119~121쪽. ↩
이 문서는 한국어 위키백과의 「박종채」 문서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r39031392)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원문 기여자 목록은 원문 역사에서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전 11:56 · r3004 · 문서 내용은 CC BY-SA 4.0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