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양
박원양(朴元陽, 1804년 ~ 1884년 12월 17일(1884년 음력 11월 1일)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성리학자, 교육자, 정치인이다. 박영교, 개화파의 핵심인물이자 갑신정변의 주동자인 박영효 형제의 아버지이며 박제당의 아들이다.
출생~사망 1804년 ~ 1884년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전 11:48
문서 정보
- 출생 ~ 사망
- 1804년 ~ 1884년
- 본명
- 박원양
- 출생
- 1804년, 수원군
- 사망
- 1884년 12월 17일, 의금부
- 성별
- 남성
- 국적
- 조선
- 경력
- 현감, 도사, 참의, 참판, 도총부 부총관, 공조판서
- 직업
- 문신, 성리학자, 교육자, 정치인
- 상훈
- 영의정 추증, 정간 시호
박원양(朴元陽, 1804년 ~ 1884년 12월 17일(1884년 음력 11월 1일)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성리학자, 교육자, 정치인이다. 박영교, 개화파의 핵심인물이자 갑신정변의 주동자인 박영효 형제의 아버지이며 박제당의 아들이다.
관직에 나가지 않고 학문을 연마하다가 뒤늦게 음서로 관직에 나가 현감, 도사 등을 지냈으며, 흥덕현감 근무 중에는 암행어사 이돈상(李敦相)의 보고로 승진하기도 했다. 1871년 아들 박영효가 철종의 고명딸 영혜옹주와 결혼하면서 여러번 승진하여 참의, 참판, 도총부 부총관, 공조판서에 올랐다.
갑신정변에 연좌되어 삭탈관직당하고 의금부에서 굶어 죽었다. 뒤에 아들 박영효의 상소로 복권되고 사후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정간(貞簡)의 시호가 내려졌다. 자(字)는 경유(景猷), 본관 반남(潘南)이고 시호는 정간이다. 수원군 출신.
생애
박원양은 경기도 수원 출신으로, 노론계 인사인 진안현감 박해수(朴海壽)의 손자이자 박제당(朴齊堂)의 아들이고, 개화파의 핵심인물이었던 박영교, 박영호, 박영효 형제의 아버지이다. 당대의 조선 정계 거물이었던 박규수, 박지원 등은 그의 8대조인 박언의 형제 금양위(錦陽尉) 박미의 후손들로 먼 일족이었다. 학자인 그는 관직에 나가지 않고 성리학을 연마하며 어윤중 등을 문하생으로 길러냈다. 처음 송연(宋涎)의 딸 송씨와 결혼하였으나 사별하고, 뒤이어 이윤행(李允行)의 딸 전의이씨를 아내로 맞이하여 박영교, 박영호, 박영효 형제를 낳았다.
1846년(헌종 12년)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뒤이어 진사시에 합격하고 음서로 관직에 나가 1868년 흥덕 현감(興德縣監)을 지냈다. 그해 11월 전라우도 (全羅右道暗行御史) 이돈상(李敦相)의 장계로 특별 승진하였다. 1870년 흥덕현감 재직 중 다시 특별 승진했고, 도사(都事) 등을 거쳤으며, 1871년(고종 9년)에 아들 영효가 철종의 사위가 되자 음서(蔭敍)로 승진을 거듭하여 1872년초 통정대부 , 1873년 으로 승진했다. 1874년(고종 11년) 7월 도총부 도총관(都總府副總管)을 지냈으며, 첨사(法聖浦僉使)를 거쳐 1875년 동의금 이후 1882년 행으로 나이 79세라는 이유로 가의대부로 승진한 뒤 이후 로 승진하고 1883년에 에 올랐다. 이후 지의금에 임명됐다. 그러나 전일 첨사 재직 중의 비행으로 로부터 을 당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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