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윤
박석윤(朴錫胤, 1898년 10월 26일 ~ 1950년 10월 20일)은 일제강점기의 언론인 겸 공작원이자 만주국 관료로, 만주에서 활동했던 일본 제국의 정보, 첩보공작 조직인 민생단을 조직한 것으로 유명하다. 최남선의 매부였다. 해방 직후에는 총독부에 근무 중이던 학교 후배 최하영 등의 추천과 조선총독부 엔도 류사쿠 정무총감의 부탁으로, 9월 2일 미 군정 주둔 때까지 치안 혼란을 수습하는 역할을 맡았다.
출생~사망 1898년 10월 26일 ~ 1950년 10월 20일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13
문서 정보
- 출생 ~ 사망
- 1898년 10월 26일 ~ 1950년 10월 20일
- 출생
- 1898년 10월 26일
- 사망
- 1950년 10월 20일
- 성별
- 남성
- 국적
- 일제강점기 조선
- 경력
- 민생단 조직
- 직업
- 언론인, 공작원, 만주국 관료
- 위치
- 35.3189, 126.9839
박석윤(朴錫胤, 1898년 10월 26일 ~ 1950년 10월 20일)은 일제강점기의 언론인 겸 공작원이자 만주국 관료로, 만주에서 활동했던 일본 제국의 정보, 첩보공작 조직인 민생단을 조직한 것으로 유명하다. 최남선의 매부였다.
해방 직후에는 총독부에 근무 중이던 학교 후배 최하영 등의 추천과 조선총독부 엔도 류사쿠 정무총감의 부탁으로, 9월 2일 미 군정 주둔 때까지 치안 혼란을 수습하는 역할을 맡았다.
생애
전라남도 담양 출신이며 본적지는 경성부 종로이다. 최남선의 여동생인 최설경과 결혼했다. 조선총독부와 밀착하여 독립 운동가들에게 전향 공작을 벌이는 일로 일제에 부역하기 시작했다. 3·1 운동 직후 김준연 전향을 꾀했다가 실패했으며, 이후 조선총독부의 후원으로 도쿄 제국대학을 졸업하고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에 유학했다. 귀국 후 《시대일보》 정치부장과 《매일신보》 부사장을 지내며, 언론을 통해 조선총독부에 적극 협력했다.
일제의 만주 침략 이후 조선인과 중국인들이 자연스럽게 항일 연합 전선을 형성하는 형국이 되자, 조선인과 중국인을 이간하며 독립 운동을 방해하기 위한 밀정 조직 민생단 창단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박석윤은 1932년 2월 5일, 동민회의 조병상을 비롯하여 김동한 등 친일 인물들을 끌어들이고, 천도교 인사들까지 규합하여 간도에서 민생단을 창단했다. 단장은 군인 출신의 박두영이 맡았다. 이 조직은 결국 중국 공산당의 오판을 불러와 으로 조선인 독립 운동가 수백여 명이 살상당하는 사태를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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