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두을
박두을(朴杜乙, 1907년 11월 8일 ~ 2000년 1월 3일)은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 부인이다. 본관은 순천이다.
출생~사망 1907년 11월 8일 ~ 2000년 1월 3일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12:21
박두을(朴杜乙, 1907년 11월 8일 ~ 2000년 1월 3일)은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 부인1이다. 본관은 순천이다.
생애
1907년 11월 28일 일제강점기 조선 대구 달성군에서 사육신 박팽년의 후손인 아버지 박기동의 4녀로 태어났다. 박팽년의 후손답게 선비였던 아버지 박씨와 '교동댁'으로 불렸던 어머니 손에서 박두을은 엄격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얼굴이 예쁘고 인심이 좋아 평소 '두리'라는 애칭으로 불렸다고 한다. 15세 되던 무렵 어느 날 절에서 시주를 나온 한 스님으로부터 "처녀는 앞으로 왕비가 아니면 일국의 왕 못지않은 갑부가 될 사람을 만나 그 안방마님이 되겠소."라는 말을 하였다. 이 일화가 사실이라면 스님의 예견이 적중한 셈이다. 이후 박두을은 1926년 20세에 삼성 창업자인 이병철과 결혼하였다.
전해지는 이야기
박두을에 관한 공식적인 자료는 거의 없다. 남편 이병철의 일생이 자서전과 소설, 추모집 등을 통해 자세히 알려진 것과 대조적이다. 하긴 그 옛날 내조하는 아내의 전통적인 삶이란 게 이렇게 철저히 그림자였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이병철조차 286쪽에 달하는 자서전에서 박두을에 대한 언급을 단 몇 문장으로 줄였다.
처음 본 인상은 건강한 여성이라는 것이다. 슬하에 3남 5녀를 두고 반세기여를 서로 도우면서 살아왔다. 내자 역시 유교를 숭상하는 가문에서 전통적인 부덕(婦德)을 배우고 성장해서 그런지, 바깥 활동은 되도록 삼가고 집안일에만 전심전력을 다해왔다. 예의범절에도 밝아 대소사가 두루 화목하다. 지금까지 몸치장 얼굴치장 한번 제대로 해본 적이 없고 사치와는 거리가 멀다. 그처럼 수신제가의 자세에 흐트러짐이 없는 내자에게 언제나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박두을에 대한 기록은 장남 이맹희가 쓴 책이 비교적 자세하다. 삼성그룹 후계 자리를 동생 이건희에게 내준 비운의 황태자로 알려진 그는 1993년 '묻어둔 이야기'라는 회고록에 어머니 박두을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놓았다.
아버지 집안이 의령 일대에서는 부자라고 했지만 굳이 비교해보자면 당시 달성에 있었던 외가 쪽이 더 부농이었던 것 같다. 어린 시절, 어머니로부터 "시집이라고 왔더니 집도 좁고 그렇게 가난해 보일수가 없었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집안 어른들에 따르면 친가 쪽도 물론 3000석 지기에 가까울 정도의 부를 지닌 집안이었고 서원을 세울 정도의 성리학자셨지만 외가 쪽 지체가 워낙 높아서 '한쪽으로 기우는 혼사'였다는 말들이 있었다. 실제 어머니는 시집 올 적에도 몸종을 비롯하여 몇 명의 하인을 데리고 왔다고 한다.
가족 형성
박두을은 남편 이병철이 대학 재학 중인 1929년에 장녀 이인희를 낳은 데 이어 3남 5녀를 둔 어머니가 되었다. 호암자전에서 은 자신의 자녀 수를 4남 6녀라고 적시했다. 이 중 자신과 박두을과의 사이에서 3남 5녀를 두었고, 일본인 아내와의 사이에 1남 1녀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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