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월
민월(閩越, 빈웨)은 현재의 중국 푸젠성에 존재했던 정권이다. 전국 시대에 [[초나라]]에 의해 멸망한 [[월나라|월]]의 사람들이 이 지역으로 피신하여 현지의 [[백월|백월족]]과 함께 세웠다. 존속 기간은 기원전 306년부터 기원전 110년경으로 여겨진다. 특히 기원전 202년 전후의 반세기 동안 국력이 충실하여 당시 중국 동남부 최대의 국가 세력이 되었다. 민월왕 [[추무제]]가 성촌(현재의 푸젠성 [[난핑시]] [[우이산시]] 싱톈진)에 쌓은 왕성은 이 지역 최대의 도시가 되었다。
건국~멸망 기원전 334년 ~ 기원전 110년마지막 수정 2026. 10. 16. 오후 4:27
문서 정보
- 건국 ~ 멸망
- 기원전 334년 ~ 기원전 110년
민월(閩越, 빈웨)은 현재의 중국 푸젠성에 존재했던 정권이다.
전국 시대에 초에 의해 멸망한 월의 사람들이 이 땅으로 피신하여, 현지의 백월족과 함께 세운 나라이다. 존속 기간은 기원전 306년부터 기원전 110년경으로 여겨진다. 특히 기원전 202년 전후의 반세기 동안은 국력이 충실하여, 당시 중국 동남부 최대의 국가 세력이 되었다. 민월왕 추무제가 성촌(현재의 푸젠성 난핑시 우이산시 싱톈진)에 쌓은 왕성은 이 지역 최대의 도시가 되었다.
성립의 배경
춘추 시대 후기부터 전국 시대(기원전 475년 - 기원전 221년) 전기에 걸쳐, 구천에 의해 부흥되어 회계(현재의 저장성 사오싱시)에 존재했던 월이었으나, 기원전 306년에 구천의 7세손인 무강이 초나라와의 전투에서 패하여 살해되면서 월은 멸망하였다. 월의 왕족은 바닷길로 민중에 들어왔고, 월의 백성들도 월천산(현재의 푸젠성 푸저우시 창러구)에 이르렀다. 이렇게 하여 월인들이 푸젠 북부에 정주하며 그곳 원주민인 백월족과 융합하였고, 이윽고 민월을 건국하기에 이르렀다.
민중군의 설치
기원전 221년, 진이 중국을 통일하자 민중에 병력을 파견하였고, 이듬해에는 민월인의 활동 지역에 민중군을 설치하였다. 당시 진의 조정은 민중을 중원에서 멀리 떨어진 황복의 땅으로 인식하였고, 또한 지형이 험준하며 월인들도 억세어 통치가 어렵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진의 48군 가운데 하나로 민중군을 설치하였으나, 그 통치 방식은 다른 군들과는 달랐다. 진 말기에 수위·영·장을 파견하였지만, 민월왕의 왕위를 폐하고 「군장」이라는 명칭만 주어 종래와 같이 통치하게 하는 데 그쳤고, 실질적인 통치력이 미치지는 못했다.
그러나 민월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고자 했던 진은 월인들을 대량으로 현재의 저장성 북부와 안후이성, 장시성으로 이주시켰으며, 또한 중원의 범죄자들을 중심으로 이주를 추진하여 그 융합을 도모하였다.
기원전 209년, 진승·오광의 난이 일어나자 이전까지 진의 영향력이 있던 각지에 영향을 미쳤다. 민월왕 추무제는 병사를 이끌고 민중에서 북상하여 중원의 농민 반란에 가담하였으며, 진 조정에 타격을 주었다. 기원전 206년 진이 멸망하고 초한 전쟁이 시작되자, 추무제는 다시 중원으로 북상하여 유방을 지원해 항우를 격파하였고, 한 조정의 건국에 공헌하였다. 기원전 202년, 한 조정은 추무제의 지원에 감사하여 그를 민월왕에 봉하고 민중의 통치를 인정하였다. 추무제는 선유 일대를 그 영향 아래 두었다. 또한 이해에 추무제는 민월왕성의 재건에 착수하였다.
민월왕성은 면적이 약 48만 제곱미터였으며, 네 개의 성문을 갖추고 있었다. 동서 성문 사이에는 둥근 돌로 포장된 폭 10미터의 대로가 정비되었고, 대로의 북쪽에는 2만 제곱미터의 궁전 구역이 마련되었다. 당시 민월은 동남 일대 최대의 세력이었으며, 왕성 역시 현지 최대의 도시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1세기에 걸친 발전 속에서 민월인들은 백월 문화의 풍속, 습관, 종교, 문화, 예술 등을 유지하였고, 정치와 경제 면에서는 화하 문화의 영향을 받아 찬란한 민월 문화를 창조하였다.
추무제가 죽은 뒤 그 자손들 사이에서 내분이 일어났고, 자주 내전으로 이어졌다. 그런 가운데서도 북방의 동구, 남방의 남월을 공략하여 백월 여러 민족의 복종뿐 아니라 주변 나라들의 조공까지 실현하였고, 전한 남방의 대세력이 되었다.
민월왕 추여선 시기에는 「무제」라는 옥새를 새겨 황제로서 자립하였고, 반한의 병사를 일으켰다. 이 시기의 한 조정은 무제의 치세 아래 국력이 충실하였고, 지방 세력의 강대화를 반대하던 시기였다. 무제는 흉노를 공략하여 북방을 안정시킨 뒤, 수십만의 병사를 민월에 파견하였다. 동시에 한 조정은 민월에 대해 정치 공작을 벌여 일부 세력을 한 조정에 귀순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사전 준비를 갖춘 무제는 기원전 110년 대군을 이끌고 민월을 강회(장강과 회수) 내지로 옮길 것을 명하였고, 민월은 멸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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