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소
민영소(閔泳韶, 1852년 ~ 1917년)는 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의 문신, 정치인이다. 1894년 병조판서로 재직하면서 홍종우를 시켜 망명중인 개화파 김옥균을 암살을 사주하였다. 본래 민철호(閔哲鎬)의 아들이나 이조판서를 지낸 민규호에게 입적되었다.
출생~사망 1852년 3월 21일 ~ 1917년 3월 10일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11
문서 정보
- 출생 ~ 사망
- 1852년 3월 21일 ~ 1917년 3월 10일
- 후임
- 민충식
- 출생일
- 1852년
- 사망일
- 1917년
민영소(閔泳韶, 1852년 ~ 1917년)는 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의 문신, 정치인이다. 1894년 병조판서로 재직하면서 홍종우를 시켜 망명중인 개화파 김옥균을 암살을 사주하였다. 본래 민철호(閔哲鎬)의 아들이나 이조판서를 지낸 민규호에게 입적되었다.
생애
1878년 과거에 합격한 뒤 여흥 민씨 집권당(수구당)의 일족으로 빠른 승진을 거듭했다. 특히 호조판서, 병조판서, 직제학 등을 맡았으며, 1884년 갑신정변을 무난히 극복한 공을 인정 받았다.
대표적인 민씨 세력으로서 임오군란 때 목숨은 건졌으나 살고 있던 가옥이 파괴되는 일을 겪었다. 1894년 병조판서로 재직하면서 홍종우로 하여금 상하이에 피신, 망명해 있던 김옥균을 암살하도록 교사하였다.
1894년 6월 23일(음력 5월 20일)부터 28일까지 한성판윤을 역임하였다.12 1894년 7월 갑오경장 때 관직에서 물러났다가, 1897년 대한제국이 수립되자 궁내부 특진관이 되었다. 1899년 규장각 학사, 1901년 학부대신, 궁내부대신, 1904년 농상공부대신을 차례로 지냈다.
1910년 10월 16일 일본 정부로부터 자작 작위를 받았고, 매국 공채 5만 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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