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자
미자(微子, ? ~ ?)는 중국 상나라의 왕족이자, 서주의 제후국인 송나라의 초대 공작(재위: 기원전 1038년 ? ~ 기원전 1025년 ?)이다. 성(姓)은 자(子) 씨(氏)는 송(宋) 이름은 계(啓)이다. 미(微)나라에 봉해졌고 자작의 작위를 받았으므로 '미자(微子)'라고 한다. 송성(宋姓), 종성(鍾姓), 화성(華姓), 공성(孔姓) 악성(樂姓) 묵성(墨姓), 화성(花姓)의 시조로 전해져 오며, 《논어》에서는 미자, 기자, 비간 세 사람을 '은나라의 세 어진 사람[殷三仁]'으로 부른다. 《사기》 등 한나라의 서적에서는 전한 경제
출생 연도 미상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19
문서 정보
- 출생
- 연도 미상
- 재위
- B.C.1038 ~ B.C.1025
- 후임
- 송미중연(宋微仲衍)
- 휘
- 啓
- 왕조
- 송(宋)
- 가문
- 원시조 黃帝 도시조 帝嚳 비조 帝堯 시조 湯王
- 부친
- 상나라 29대 왕 제을(帝乙)
- 기타 친인척
- 기자(숙부)
- 종교
- 天神
미자(微子, ? ~ ?)는 중국 상나라의 왕족이자, 서주의 제후국인 송나라의 초대 공작(재위: 기원전 1038년 ? ~ 기원전 1025년 ?)이다. 성(姓)은 자(子) 씨(氏)는 송(宋) 이름은 계(啓)이다. 미(微)나라에 봉해졌고 자작의 작위를 받았으므로 '미자(微子)'라고 한다. 송성(宋姓), 종성(鍾姓), 화성(華姓), 공성(孔姓) 악성(樂姓) 묵성(墨姓), 화성(花姓)의 시조1로 전해져 오며, 《논어》에서는 미자, 기자, 비간 세 사람을 '은나라의 세 어진 사람[殷三仁]'으로 부른다. 《사기》 등 한나라의 서적에서는 전한 경제를 피휘하여 이름을 뜻과 발음이 비슷한 '개(開)'로 표기한다.
생애
미(微)는 영지의 이름으로 아버지는 상나라 왕 제을이며 황제(黃帝)의 후손이자 제곡과 요임금의 직계 후손이다. 상나라 마지막 왕 주왕의 이복형이고 고조선을 통치했던 기자는 숙부이다. 미자계는 현명하고 올바른 사람이었으나, 후궁이었던 주왕의 생모가 정실이 되면서 권력에 밀려 이복동생에게 왕위를 양보 하게 되었다.
처음에 미(微)2나라에 봉해졌는데 정치를 현능하게 하니 백성들에게 인정받고 받들어졌다. 상나라가 혼란하여 장차 망하게 되니 미자는 여러 번 직접 제신에게 가서 간언하였으나 제신은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3 태사(太師) 기자와 소사(少師) 비간과 모의하였는데, 기자가 깨우쳐 말하기를 "정성을 다해 나라를 다스릴 수 있게 된다면 죽어도 한이 없겠으나 죽어도 끝내 그렇게 될 수 없으니 떠나감만 못합니다."라고 하니, 이에 제신에게서 멀리 떠나 미나라로 돌아갔다.
주왕이 주지육림의 방탕한 생활과 폭정을 계속 하자 왕실의 맏형인 미자계는 실정을 멈추라고 여러 차례 간언했으나 매번 무시나 위협을 당했다. 주왕의 숙부 기자는 주왕에게 간언하다가 주왕의 진노를 사서 겨우 목숨을 건진뒤 화를 피하려 광인 행세를 했으나 결국 투옥 되었고 충신 비간은 간언하다가 주왕에게 처형되었다. 이에 미자계는 주왕에게 천명이 떠난 것을 알고 예악(禮樂)을 관장하는 관리들과 제사 도구 등을 가지고 왕실 가족들과 함께 본인의 봉지(封地)로 피했다. 주나라군은 목야 대전에서 상나라에 승리하고, 주왕은 스스로 궁궐에서 분신 자살했다. 미자계는 무왕에게 상나라의 사직이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했고 이에 주왕의 아들 무경(武庚)이 은나라를 계속 이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러나 상나라가 다시 부활할 것을 우려하여 자신들의 형제인 관숙(管叔) 선, 채숙(蔡叔) 도, 곽숙(霍叔) 처[1]를 감시자로 보냈다. 이들을 3인의 감시자라는 하여 삼감(三監)이라고 부른다.
이 문서는 한국어 위키백과의 「미자」 문서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r36049914)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원문 기여자 목록은 원문 역사에서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19 · r56831 · 문서 내용은 CC BY-SA 4.0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