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자
묵자(중국어 정체자: 墨子, 병음: Mòzǐ 모쯔[*]: 기원전 480년 ~기원전 390년)는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송(현재 하남성 상구)에서 탄생한 사상가이자 철학자이다. 초기 전국 시대에 제자백가 중 묵가를 대표하는 위인이다. 핵심 사상은 겸애이고 《묵자》에 전한다. 유교 및 도교와 대립하였다. 그의 사상은 여러 나라에서 채택됐으나 진이 전국을 통일하자 선호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농성의 달인이어서 초나라의 공격을 아홉 번이나 방어하였다. "굳게 지킨다"는 뜻인 묵수가 여기서 유래했다.
출생~사망 기원전 470년 ~ 기원전 391년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14
묵자(중국어 정체자: 墨子, 병음: Mòzǐ 모쯔[*]: 기원전 480년(추정) ~기원전 390년(추정))는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송(현재 하남성 상구)에서 탄생한 사상가이자 철학자이다. 초기 전국 시대에 제자백가 중 묵가를 대표하는 위인이다.
핵심 사상은 겸애이고 《묵자》에 전한다. 유교 및 도교와 대립하였다. 그의 사상은 여러 나라에서 채택됐으나 진이 전국을 통일하자 선호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농성의 달인이어서 초나라의 공격을 아홉 번이나 방어하였다. "굳게 지킨다"는 뜻인 묵수가 여기서 유래했다.
철학
묵자는 참사랑이 부족하여 세상이 혼란스럽다고 판단하고, 사람들이 평등하게 서로 사랑하고 남에게 이롭게 하면 하늘의 뜻과 일치하여 평화롭게 된다는 겸애를 주장했다. 그것을 실행하는 방법으로 빈부 격차가 없는 경제상 평등(문리)을 강조하고 검소하게 생활하며 예악을 가볍게 생각하라고 주장하고 정치설로서는 비전론이 있다. 겸애 사상은 유가의 인, 불가의 자비와 유사하고 귀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종교상 색채는 민간 신앙을 계승한 듯하며, 신분이나 관등이나 직책의 상하 관계에 의거한 서열을 존중하여 전통과 예악을 숭상하는 유가와 상대하였으나 겸애의 개념은 기득권층의 정치상 이유 탓에 역사상·철학상 발전하지 못하였다. 묵가는 진 이후에 쇠퇴하여 소멸하였다. 그 사람이 한 주장과 제자들의 설을 모은 책 《묵자》에 그 사람의 사상이 기록되어 있다.1 하지만 묵적이 사회적인 계급을 완전히 거부한 것은 아니다. 그는 사회의 구성원들이 각자 맡은 일에 따라 나뉜 사회의 계급을 인정하였다. 다시 말하자면, 왕 밑에는 신하들이 있듯이 만인을 대표하여 그들의 일을 다루는 자 밑에는 그를 보필하여 국정을 보살피고 민생을 안정시키는 사회의 구성에 필요한 계급은 인정하였다.
공자와 묵자의 사상과 이론은 존비친소에 토대한 규범에 관한 부분은 차이가 있으나 전체 맥락에서는 꼭 반대되지는 않는다. 정치가 백성을 이로운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은 공자의 철학과 통하는 부분도 있다.
묵자는 유가의 '존비친소'에 기초한 사랑을 비판하면서, 다른 사람의 가족도 자신의 가족을 대하듯 하라고 주장하는 겸애를 주장하였다. 이 겸애는 유가에서 '아비도 몰라보는 집단'이라고 비난받는다. 묵자는 유교의 허례허식이 백성의 이익을 저해한다고 판단하여 유교의 예를 맹렬히 비판하였다(유가의 삼년상의 비판을 대표할 정도로 전형이 될 만한 특징이 있는 예이다). 공자를 포함한 사상가 대부분은 통치자가 백성을 이롭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묵자는 그런 사람들과 달리 통치자도 백성처럼 검소하게 생활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관습화한 예를 소모성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묵자의 사상을 보면, 상현은 유가의 주장을 반박하여 관리의 임용에는 신분이나 직업에 구애하지 않고 문호를 넓게 개방하여 등용하라고 말하였다. 묵자의 겸애는 자국과 타국, 자가와 타가의 차별을 없애고 사람은 널리 서로 사랑하라는 설로서 묵자 사상의 결정체인데 공자가 통치자 처지에서 백성을 이롭게 해야 한다는 주장 일정부 통하므로, 반드시 배치된다고 간주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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