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진동
류진동(柳辰仝, 1497년 11월 23일~ 1561년 3월 11일)은 조선 중의 문신·서화가로,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숙춘(叔春), 호는 죽당(竹堂)이다. 류자문(柳子文)의 손자이자 류도(柳濤)의 아버지이다.
출생~사망 1497년 ~ 1561년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13
문서 정보
- 출생 ~ 사망
- 1497년 ~ 1561년
- 출생
- 1497년 11월 23일
- 사망
- 1561년 3월 11일
- 성별
- 남성
- 국적
- 조선
- 직업
- 문신, 서화가
류진동(柳辰仝, 1497년 11월 23일~ 1561년 3월 11일1)은 조선 중의 문신·서화가로,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숙춘(叔春), 호는 죽당(竹堂)이다. 류자문(柳子文)의 손자이자 류도(柳濤)의 아버지이다.
생애
1531년(중종 26) 문과에 병과(丙科)로 급제해 승문원정자(承文院正字)가 되었으며1, 1543년(중종 38) 특지(特旨)로 홍문관부제학(弘文館副提學)에 임명되어 당상관의 반열에 올랐다.2
1549년(명종 3) 전라도 도관찰사(全羅道 都觀察使), 1551년(명종 5) 경기도 관찰사(京畿都 觀察使), 1556년(명종 11) 함경도 도관찰사(咸鏡道 都觀察使) 등의 외직을 거쳐 1558년(명종 13) 공조판서(工曹判書)에 임명되었으며, 이듬해 도총관(都摠管)을 겸했으나, 같은 해 병으로 사직을 청해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로 체직되었다.
1799년(정조 23) 정민(貞敏)이라는 시호를 받았다.4
기타
글씨와 그림에 뛰어났으며, 특히 대나무를 잘 그렸다. 2008년 숭례문 방화 사건이 있기 전의 남대문 현판인 '숭례문' 3자를 썼다는 설이 있다.
《류진동 선생 묘 및 신도비》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행신동에 있다. 1991년 6월 25일 고양시의 향토유적 제28호로 지정되었다.
가족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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