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아
두아(Dua, 1254년 ~ 1307년)는 차가타이 한국의 제10대 칸(재위 : 1282년 ~ 1307년)으로, 차가타이 한국의 실질적인 건국자이다. 한자식 표기는 두와(都硅 또는 篤哇, 都瓦), 또는 두아(都阿), 도르아(都勒斡). 제7대 칸 바라크 칸의 아들이다. 차가타이 한국의 혼란을 틈타 왕위 계승권 경쟁에 참여했으며, 오고타이 한국의 카이두 칸을 도와 원나라의 세조 쿠빌라이를 상대로 전쟁에 참여했으나, 뒤에 카이두를 배신하고 오고타이 한국을 멸망시켰다.
출생~사망 1282년 ~ 1307년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12
문서 정보
- 출생 ~ 사망
- 1282년 ~ 1307년
- 출생
- 1254년
- 사망
- 1307년
- 성별
- 남성
- 국적
- 차가타이 한국
- 경력
- 차가타이 한국 제10대 칸
- 직업
- 군주
- 활동 기간
- 1282년 ~ 1307년
- 소속
- 차가타이 한국
두아(Dua, 1254년 ~ 1307년)는 차가타이 한국의 제10대 칸(재위 : 1282년 ~ 1307년)으로, 차가타이 한국의 실질적인 건국자이다. 한자식 표기는 두와(都硅 또는 篤哇, 都瓦), 또는 두아(都阿), 도르아(都勒斡). 제7대 칸 바라크 칸의 아들이다.
차가타이 한국의 혼란을 틈타 왕위 계승권 경쟁에 참여했으며, 오고타이 한국의 카이두 칸을 도와 원나라의 세조 쿠빌라이를 상대로 전쟁에 참여했으나, 뒤에 카이두를 배신하고 오고타이 한국을 멸망시켰다.
생애
차가타이 칸의 4대손으로, 1221년 바미얀 공략 중 전사한 무투겐의 증손이자 에세나토의 손자였다. 할아버지 에세나토는 이름만 전하고 자세한 행적은 전하지 않는다. 아버지 바락은 1266년 쿠빌라이 카안에 의해 5촌 당숙 무바라크 샤의 공동 통치자로 임명되었다.
1271년 아버지 바락은 우구데이 칸국이 보낸 자객에 의해 의문의 독살을 당했다. 아버지 바락이 죽을 당시 그는 세력도 없고, 나이가 어렸으므로 왕위는 그의 다른 친족 네구베이, 부카 테무르에게 넘어갔다. 1272년 그는 오고타이 한국의 카이두에 의해 차가타이 한국의 칸으로 추대되었다. 그러나 그는 나이가 어려 실권이 없었다. 그는 카이두와 대립하는 한편 카이두의 측근이 된, 차가타이 칸국 5대 군주 알루구의 아들 츄베이 등 알루구의 자손들과도 칸위 계승권을 놓고 10년간 대립하였다. 알루구는 차가타이 칸의 6남 바이다루의 아들이었다.
1274년 카이두는 두아를 트란스옥시아나의 총독으로 임명했다. 차가타이 칸국에 반란이 일어나자, 카이두는 1282년에 반란 세력과 타협하여 바락의 아들인 두아를 칸위에 올렸다. 칸위에 오른 두아는 에 더 이상 저항하지 않고 를 따르게 됐으며 카이두는 더 이상 차가타이 칸국을 걱정하지 않게 됐다. 그러나 1287년 혹은 1291년이 되어서야 를 최종 격파하고 차가타이 울루스 전역을 손에 넣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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