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 전선 (제1차 세계 대전)
제1차 세계 대전의 동부 전선(Ostfront, Восточный фронт Первой мировой войны)은 유럽 동부에서 일어나 동맹국의 승리로 끝났다. 동부 전선은 제1차 세계대전 때 동맹군의 러시아 방면의 전선이다. 독일은 서부전선에서의 작전지체로 동부로부터 러시아군의 공격을 받자, 힌덴부르크가 이를 타넨베르크에서 격파하였다. 소강상태 후 1915년에는 독일군이 바르샤바를 함락하고 폴란드를 석권하였다. 1916년 재건된 러시아군은 다시 공격, 독일의 병력을 서부전선에서 분산시켜 한때 그 반격을 좌절시켰다.
시작~종료 1914년 8월 17일 ~ 1918년 3월 3일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09
문서 정보
- 시작 ~ 종료
- 1914년 8월 17일 ~ 1918년 3월 3일
- 날짜
- 1914년 ~ 1918년
- 장소
- 동유럽 지역과 러시아 일부 지역
- 결과
- 동맹국의 승리 (브레스트 리토프스크 조약)
- 위치
- 51.0000, 10.0000
제1차 세계 대전의 동부 전선(Ostfront, Восточный фронт Первой мировой войны)은 유럽 동부에서 일어나 동맹국의 승리로 끝났다.
동부 전선은 제1차 세계대전 때 동맹군의 러시아 방면의 전선이다. 독일은 서부전선에서의 작전지체로 동부로부터 러시아군의 공격을 받자, 힌덴부르크가 이를 타넨베르크에서 격파하였다. 소강상태 후 1915년에는 독일군이 바르샤바를 함락하고 폴란드를 석권하였다. 1916년 재건된 러시아군은 다시 공격, 독일의 병력을 서부전선에서 분산시켜 한때 그 반격을 좌절시켰다.
배경
독-러 갈등의 심화
19세기 말엽, 독일 제국의 수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는 프랑스의 고립과 유럽의 세력 유지를 위해 3제 동맹을 1873년 체결하였으나, 발칸 문제를 둘러싸고 오스트리아와 러시아의 갈등이 격화됨에 따라 폐기하였다. 이후 1878년 산 스테파노 조약에서 확대된 러시아의 발칸 이권을 재조정한 베를린 회의에서 비스마르크가 러시아의 이권을 크게 약화시키자, 독일-러시아 간 외교 협조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1879년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2국 동맹을 체결하였고, 1882년 프랑스와 러시아의 견제를 위해 이탈리아까지 끌어들여 삼국 동맹을 체결하였다. 그와 동시에 비스마르크는 러시아의 위협을 인식하고 독일-프랑스 간 전쟁이나 러시아-오스트리아 간 전쟁에서 각각 러시아와 독일의 중립을 보장하는 재보장 조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빌헬름 2세가 비스마르크를 해임하고 유럽의 외교 무대에서 공격적인 팽창주의 정책을 펼치며 재보장 조약의 연장을 거부하는 등 반러 정책을 대놓고 펼치기 시작하자, 독일과 러시아 간 관계는 노골적인 적대 관계로 흘러가기 시작하였다.
러시아의 삼국협상 조인
1894년 독일 견제의 필요성을 느낀 러시아는 프랑스와 러불 동맹을 맺었고 독일에 위협을 느낀 영국까지 화려한 고립을 중단하고 1904년 영불 협상과 1907년 영러 협상을 맺고 이에 가세했다. 이에 러시아와 프랑스의 관계는 더 깊어졌다. 가령 프랑스는 자국의 상당한 자본을 러시아의 공장과 철도 건설에 투자했고, 러시아는 군함과 야포, 항공기를 비롯한 많은 무기를 프랑스로부터 수입하고, 장군단의 상호 방문과 교류를 통해 연계를 확대해 나갔다.
개전
동부 전선의 개전은 곧 1차 세계대전의 개전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최후 통첩, 협상, 동원령 선포 등의 한달간의 복잡한 외교적인 절차들을 거치고, 동부 전선은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1913년 오스트리아가 보스니아를 자국으로 병합한 이후 (범슬라브주의를 주창하며 러시아가 배후에 있던)세르비아와 오스트리아-헝가리 간 갈등은 점차 심각해졌고, 1914년 6월 28일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의 페르디난트 황태자 부부가 피살된 이후 최악으로 치달았다. 세르비아는 오스트리아의 요구를 부분적으로 수용하였지만, 7월 28일 러시아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오스트리아군은 베오그라드 포격을 시작으로 세르비아 침공을 개시했다. 이에 세르비아의 후견국이었던 러시아는 29일 부분 동원령을 선포했고 30일 총동원령을 선포했다. 독일은 12시간 내에 동원령을 물리지 않으면 전쟁을 선포할 것이라는 최후 통첩을 보냈다. 러시아는 협상 의사를 타진했으나, 결국 8월 1일 독일은 전쟁을 선포했다.
1914년
러시아군의 동프로이센 공세와 참패
프랑스-러시아 조약에 따르면, 니콜라이 2세의 러시아군은 동원령을 내린 지 16일 이내에 독일군을 공격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최초의 러시아군 부대가 국경을 넘어 동부 프로이센로 들어온 것은 동원 후 불과 8일 만인 8월 7일이었다. 러시아군은 두 갈래로 공격해 왔다. 파벨 칼로비치 레넨캄프 장군 휘하의 1개 군은 동쪽으로 프로이센 국경을 넘었고, 알렉산드 바실리예비치 장군 휘하의 러시아군은 훨씬 남쪽에서 월경했다. 러시아군은 철저하게 요새화된 동(東) 의 수도 남방에서 거대한 가위처럼 독일군을 협공할 계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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