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분의 난 (문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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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6367위키백과봇2026-10-15 | 1 | **덴분의 난**([[일본어]]: 天文の乱)은 [[일본]] [[센고쿠 시대]]의 [[덴분]] 11년에서 17년까지 6년간(1542년 ~ 1548년)에 걸쳐 일어난 [[다테 가문]] 당주 [[다테 다네무네]](伊達稙宗)와 적남 [[다테 하루무네|하루무네]](晴宗) 부자 사이의 내분과 그로 인하여 [[도호쿠 지방]] 일대에서 발생한 일련의 전란을 말한다. **우쓰로의 난**(洞の乱)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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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 ## 배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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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 [[에이쇼 (1504년)|에이쇼]] 11년(1514년)에 가독을 상속하여 다테 가문 제 14대 당주가 된 다테 다네무네는 그 후 30년에 걸쳐 많은 자식들을 주변 [[다이묘]]에게 보내어(양자·혼인) 세력을 확장하였다. 그리하여 [[덴분]] 연간 초두에는 [[무쓰국]] 10개 군을 지배하에 두고 무쓰 [[슈고]]직을 획득하여 [[모가미 씨]](最上)·[[소마씨]](相馬)·[[아시나씨]](蘆名)·[[오자키 씨]](大崎)·[[가사이 씨]](葛西) 등 오우(奥羽)[^1] 남부의 다이묘 대부분을 다테 가문에 종속시키기에 이르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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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 이렇게 오우에서 일대 세력을 구축한 다네무네는 일거에 크게 확장된 다테 가문의 통제를 위하여 [[분국법]][^2]을 제정하는 등 집권화를 강하게 추진하였다. 또한 한편으로 종속시킨 다이묘에 대해서는 유화책을 펴서, 사위 [[소마 아키타네]](相馬顕胤)에게 영지를 나누어 주려고 하였으나, 이 증여안에 다네무네의 적남 하루무네가 맹렬하게 반발하여 부자 간의 대립이 싹트기 시작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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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 이 후 이러한 부자 간의 대립을 결정적으로 만드는 사건이 발생한다. 다테 가문의 세력을 더욱 확장하려는 다네무네는 3남 도키무네마루(후의 [[다테 사네모토]](伊達実元))를 [[에치고국|에치고]] [[슈고]] [[우에스기 사다자네]](上杉定実)의 양자로 보내려고 하였으나, [[덴분]] 9년(1540년)에 에치고에서 이 양자 건을 반대하는 [[고쿠진]] 영주 [[혼조 후사나가]](本庄房長)등이 거병하여 분쟁으로 발전하였다. 다네무네는 이러한 반대파에게 대항하기 위하여 에치고에 입국하는 도키무네마루에게 가신 100명을 선발하여 수행하게 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정예 가신과 병사를 선발하여 보내면 다테 가문이 약체화 될 것을 걱정한 하루무네는 [[나카노 무네토키]](中野宗時)·[[고오리 가게나가]](桑折景長) 등 다네무네의 집권화 정책에 반대하는 중신들의 지지를 얻어 부친 다네무네를 연금하기로 결의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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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 ## 경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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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 덴분 11년(1542년) 6월, 하루무네는 매 사냥뒤 귀환하던 다네무네를 습격하여 거성 [[니시야마 성]](西山城)에 유폐하였다. 그러나 다네무네는 곧 측근에 의하여 구출되어 사위 [[가케타 도시무네]](懸田俊宗)의 거성 [[가케타 성]](懸田城)으로 탈출하여, 소마 아키타네를 비롯한 인척관계의 다이묘들에게 구원을 요청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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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 이 때문에 다테 가문의 내분은 단숨에 오우의 많은 다이묘를 끌어 들여 대규모의 전란으로 번졌다. 당초의 전황은 주변 다이묘의 대부분이 가담한 다네무네 파가 우세하였으나, 덴분 16년(1547년), 다네무네 파의 [[다무라 다카아키]](田村隆顕)와 [[아시나 모리우지]](蘆名盛氏)가 불화하여 양자가 다투기 시작하자, 아시나 가문은 하루무네 편으로 돌아섰다. 이 때문에 전황은 일변하여 하루무네 파가 우세하게 되어, 결국 이듬해 덴분 17년(1548년) 9월, [[쇼군]] [[아시카가 요시테루]]의 중재로 다네무네가 은거하고 하루무네에게 가독을 물려주는 조건으로 화의가 성립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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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 동시에 에치고에서도 도키무네마루의 양자 건에 대한 찬성파와 반대파로 나뉘어 전투가 벌어졌으나, 양자 찬성파의 [[우에스기 사다자네]](上杉定実)·[[나카조 후지스케]](中条藤資) 등이 반대파인 [[슈고다이]] [[나가오 하루카게]](長尾晴景)와 에치고 고쿠진 들에게 패하여 도키무네마루의 양자 건은 결국 완전히 좌절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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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 ## 영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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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 6년간에 걸친 전란으로 다네무네가 당주가 된 뒤부터 확대일로를 걸어온 다테 가문의 세력은 단숨에 쇠퇴하였다. 우선, 다테 가문에 복속하였던 오우의 다이묘들 중 아시나·소마·모가미 가문 등이 혼란을 틈타고 독립하여 세력을 확장하였는데, 특히 아시나 가문은 다테 가문과 어깨를 겨룰 정도로 유력한 다이묘로 성장하였다. 또한 오자키·가사이 양 가문도 양자로 들인 다네무네의 자식들이 축출당하여 다테 가문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게 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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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 한편, 다테 가문 내에서도 다네무네 파였던 가케타 도시무네 등이 화평안에 불복하여 하루무네에게 계속 반항하여, 이들을 진압하는데 5년 여가 걸렸다. 그리고 하루무네 파의 중신 [[나카노 무네토키]]가 난중에 아들 [[마키노 히사나카|히사나카]](久仲)를 [[마키노 씨|마키노 가문]](牧野氏)의 후계자로 보내는 등 세력을 길러 가문 내 최대 실력자로서 권세를 휘두르게 되었다. 하루무네는 난 종결 후 가문을 추스르고 다시 집권화를 추진하려고하나, 도움을 받은 하루무네 파의 중신들에게는 슈고 불입권 등의 특권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난의 후유증은 하루무네의 아들 [[다테 데루무네|데루무네]](輝宗) 대에 이르러서야 간신히 정리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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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 | 에치고에서는 덴분 19년(1550년)에 [[우에스기 사다자네]]가 후사를 얻지 못한채로 사망하여, 에치고 슈고 우에스기 가문은 단절되었다. 그 때문에 [[나가오 하루카게]]의 동생으로 슈고다이가 된 [[우에스기 겐신|나가오 가게토라]](長尾景虎, 후의 우에스기 겐신)이 에치고 국주가 되어 명실공히 [[센고쿠 다이묘]]로서의 지위를 획득하게 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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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 | ## 각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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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 | [^1]: 오슈(奥州, 무쓰 국)과 우슈(羽州, [[데와국]])의 총칭. 현 [[도호쿠 지방]] 전역. | |
| 30 | [^2]: [[센고쿠 다이묘]]가 자신의 영지 지배를 위해 제정한 가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