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 수립
1897년 10월 12일 고종이 환구단에서 하늘에 제사를 올리고 황제에 즉위해, 이튿날 국호를 '대한'으로 선포한 사건. 자주 독립 제국임을 대내외에 알리고 광무개혁을 추진했다.
시작 1897년 10월 12일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전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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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대한제국 수립은 1897년(광무 원년) 10월 12일 고종이 서울 소공동에 새로 쌓은 환구단에서 천지에 제사를 지내고 황제에 즉위한 데 이어, 10월 13일 국호를 '대한(大韓)'으로 정해 반포한 일련의 과정을 말한다. 이로써 조선은 청의 책봉 체제에서 벗어난 자주 독립의 황제국임을 선언했다. 대한제국은 1910년 경술국치까지 존속했다.
배경
아관파천으로 러시아 공사관에 머물던 고종은 1897년 2월 20일 경운궁(덕수궁)으로 환궁했다. 국왕이 외국 공사관에 머문 데 대한 비판이 거셌고, 독립협회와 유생, 관료들 사이에서는 국가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황제를 칭해야 한다는 칭제 건원 여론이 일었다. 청일 전쟁 이후 청의 종주권이 부정되었고, 러시아와 일본이 세력 균형을 이루던 국제 정세도 자주 독립을 선포할 여지를 주었다.
경과
- 1897년 8월: '건양' 연호를 버리고 새 연호 '광무(光武)'를 제정했다.
- 9월~10월 초: 신하와 유생들이 잇달아 황제 즉위를 청하는 상소를 올렸고, 고종은 여러 차례 사양하는 절차를 거친 뒤 이를 받아들였다.
- 10월: 옛 남별궁 자리(현 서울 중구 소공동)에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환구단을 쌓았다.
- 10월 12일: 고종은 경운궁을 나와 환구단에서 천지에 고하는 제사를 올리고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왕후 민씨는 명성황후로, 왕세자는 황태자로 책봉되었다.
- 10월 13일: 국호를 '대한'으로 고쳐 반포했다. 고종은 삼한을 아우른다는 뜻을 국호에 담았다고 밝혔다.
- 11월: 을미사변으로 시해된 명성황후의 국장을 황후의 예로 치렀다.
광무개혁
대한제국은 '옛 법을 근본으로 삼고 새것을 참작한다'는 구본신참(舊本新參)을 내세워 개혁을 추진했다.
- 정치: 1899년 8월 「대한국 국제(大韓國國制)」를 반포해 황제가 군 통수권·입법권·사법권·외교권 등 무한한 권한을 가진다고 규정했다. 1898년 6월에는 황제의 육·해군 친솔을 천명하고 원수부를 두어 군권을 황제에게 집중했다.
- 경제: 양전 사업을 벌이고 토지 소유 증명서인 지계(地契)를 발급했다. 궁내부 내장원이 광산·홍삼 등의 수입을 관리하며 황실 재정을 키웠다. 상공업 진흥을 위해 회사와 은행 설립을 장려했다.
- 사회·교육: 전기·전차·전화가 도입되고(1899년 서대문~청량리 전차 개통), 각종 실업 학교와 의학교가 세워졌다.
- 외교: 1899년 청과 대등한 「한청 통상 조약」을 맺었고, 1900년 칙령 제41호로 울릉도를 울도군으로 승격하면서 관할 구역에 석도(독도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를 포함했다. 1904년 1월 21일에는 러일 간 전쟁에 대비해 국외 중립을 선언했다.
결과와 평가
대한제국 수립은 대외적으로 자주 독립 국가임을 천명하고 근대 국가 체제를 갖추려 한 시도였다. 그러나 황제권 강화에 치중해 독립협회의 민권 운동을 탄압했고, 개혁 재원이 부족했으며, 러일 전쟁 발발과 함께 일본의 침략이 본격화하면서 개혁은 중단되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대한제국을 전통 사회에서 근대 사회로 넘어가는 과도기로 규정한다.
관련 장소
환구단은 1913년 일제가 헐고 그 자리에 조선호텔을 지었다. 현재는 신위를 모시던 황궁우와 석고 등 일부만 남아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관련 인물
- 고종(1852~1919): 조선의 제26대 왕이자 대한제국 초대 황제(광무제). 1907년 헤이그 특사 사건으로 강제 퇴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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