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포 해전
1592년 음력 6월 2일 이순신의 제2차 출전 중 통영 당포 선창에 정박한 일본 함대를 공격하여 21척을 격파하고 적장을 쓰러뜨린 해전.
시작 1592년 7월 10일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전 10:14
상세 타임라인
개요
당포 해전은 1592년 음력 6월 2일(양력 7월 10일) 경상도 미륵도의 당포(唐浦, 지금의 통영시 산양읍 삼덕리) 선창에서 벌어진 싸움이다. 사천 해전에 이은 이순신의 제2차 출전 두 번째 싸움으로, 거북선이 다시 앞장섰다.
경과
- 6월 2일 아침: 사량도를 떠난 연합 함대는 당포 선창에 일본 배 21척(대선 9척, 중·소선 12척)이 정박해 있고, 일본군이 성 안팎에서 약탈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공격: 가장 큰 배에는 높은 누각이 세워져 있고 그 위에 적장이 붉은 비단 일산 아래 앉아 있었다. 거북선이 먼저 그 배를 향해 돌진하여 용머리에서 현자총통을 쏘고 천자·지자총통으로 쳤으며, 판옥선들이 뒤를 이어 화살과 화포를 퍼부었다.
- 적장 사살: 중위장 권준이 쏜 화살에 적장이 맞아 떨어졌고, 군관들이 그 목을 베었다. 지휘관을 잃은 일본군은 무너졌다.
- 결과: 조선 수군은 정박한 일본 배 21척을 모두 깨뜨리고 불태웠다. 뭍으로 달아난 일본군을 쫓으려 했으나 다른 일본 함대가 다가온다는 보고가 있어 함대를 물렸다.
일본 측 기록에 따르면 이때 죽은 장수는 구루시마 미치유키(来島通之)로, 정유재란 때 명량 해전에서 전사한 구루시마 미치후사의 형이다.
결과와 영향
당포 승리 뒤 함대는 창신도 쪽으로 옮겨 머물렀고, 6월 4일 당포 앞바다에서 전라우수사 이억기가 이끄는 전선 25척과 합류하였다. 이로써 이순신·이억기·원균의 삼도 수군 연합 함대가 갖추어졌으며, 함대는 이어 당항포 해전으로 나아갔다. 당포는 이후 한산도 대첩 직전 함대가 머문 곳이기도 하다.
이설
당포에서 죽은 적장의 신원은 조선 측 기록에는 이름이 나오지 않으며, 구루시마 미치유키로 보는 것은 일본 측 기록에 따른 것이다. 격파한 배의 수는 21척이 널리 쓰인다.
참고 자료
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전 10:14 · r256 · 문서 내용은 CC BY-SA 4.0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