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태제
명 대종 경태제(明代宗 景泰帝, 1428년 9월 11일 ~ 1457년 3월 14일)는 중국 명나라의 제7대 황제(재위 1449년 ~ 1457년)이다. 휘는 기옥(祁鈺)이다. 연호는 경태(景泰)이다. 선덕제의 아들이며 정통제의 이복 아우이다. 어머니는 선묘현비 오씨(宣廟賢妃 吳氏)로, 경태제가 즉위하면서 효익장황후(孝翼章皇后)로 추존되었으나, 형 정통제가 천순제로 복위하면서 선묘현비로 격하되었다. 경제(景帝), 성여왕(郕戾王) 등으로도 불린다.
출생~사망 1428년 9월 21일 ~ 1457년 3월 14일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12
문서 정보
- 출생 ~ 사망
- 1428년 9월 21일 ~ 1457년 3월 14일
- 재위
- 1457년 2월 11일 ~ 1457년 3월 14일
- 재위
- 1449년 9월 22일 ~ 1457년 2월 11일
- 즉위식
- 정통(正統) 14년 9월 6일, (1449년 9월 22일)
- 전임
- 영종(英宗) 정통제(正統帝)
- 후임
- 영종(英宗) 천순제(天順帝)
- 재위
- 1435년 3월 8일 ~ 1449년 9월 22일
- 즉위식
- 선덕(宣德) 10년 2월 9일, (1435년 3월 8일)
- 휘
- 주기옥(朱祁鈺)
- 묘호
- 대종(代宗)
- 시호
- 부천건도공인강정융문포무현덕숭효경황제, (符天建道恭仁康定隆文布武顯德崇孝景皇帝)
- 능호
- 경태릉(景泰陵)
- 연호
- 경태(景泰) 1450년 ~ 1457년
- 출생일
- 선덕(宣德) 3년 8월 3일, (1428년 9월 11일)
- 사망일
- 천순(天順) 원년 2월 19일, (1457년 3월 14일)
- 부친
- 선덕제(宣德帝) 주첨기(朱瞻基)
- 모친
- 효익황태후(孝翼皇太后) 오씨(吳氏)
- 위치
- 39.9040, 116.4075
명 대종 경태제(明代宗 景泰帝, 1428년 9월 11일(음력 8월 3일) ~ 1457년 3월 14일(음력 2월 19일))는 중국 명나라의 제7대 황제(재위 1449년 ~ 1457년)이다. 휘는 기옥(祁鈺)이다. 연호는 경태(景泰)이다. 선덕제의 아들이며 정통제의 이복 아우이다. 어머니는 선묘현비 오씨(宣廟賢妃 吳氏)로, 경태제가 즉위하면서 효익장황후(孝翼章皇后)로 추존되었으나, 형 정통제가 천순제로 복위하면서 선묘현비로 격하되었다. 경제(景帝), 성여왕(郕戾王) 등으로도 불린다.
개요
1449년에 오이라트 족의 침략으로 정통제가 직접 친정을 나간 사이에 패전을 거듭하면서 급기야는 황제가 포로로 잡혀갔다. (토목의 변)
이에 북경 조정은 황제의 이복동생인 주기옥을 새 황제로 등극시켰고 주기옥은 정통제가 포로로 잡혀간 지 20여일 후인 1449년 9월 22일에 즉위하여 경태(景泰)로 개원하였다. 다음 해에 오이라트 족과 화의가 성립하여, 아무런 조건 없이 정통제가 조정에 송환되자 정통제를 상황(上皇)으로 올렸지만 남궁에 유폐하였다. 조정은 정통제를 중심으로 하는 파와 경태제를 중심으로 하는 파로 나뉘었다. 경태제는 본래 황태자였던 정통제의 아들 주견심(훗날의 성화제)을 폐하고, 자신의 아들인 주견제를 황태자로 책봉하였지만 그는 병으로 죽고 만다. 1457년에 병을 앓는 도중 정통제를 중심으로 하는 일파가 정변을 일으켜 경태제는 폐위되었고, 폐위된 지 한 달 후에 급사하였다. (탈문의 변, 1457년)
생애
경태제는 1428년(선덕 3년) 선덕제의 차남으로 태어났으며 생모는 현비 오씨였다. 오현비는 《명사 明史》에 의하면 오현비는 선덕제의 황태자 시절부터 시중들던 시녀였다 한다.
정통제 즉위 후 성왕(郕王)에 봉해졌다. 1449년 오이라트족의 군대가 북경을 점령, 토목의 변이 발생하여 정통제가 오이라트 태사 에센 타이시에게 포로로 끄려가게 됐다. 성왕 주기옥은 손태후(孫太后)의 명을 받고 감국(監國)에 임명됐다. 그러나 이후 그는 우겸(于謙) 등 대신들의 추대로 황제에 올랐다. 명 대종은 연호를 경태(景泰)라 했고 몽골에 포로로 끌려간 정통제는 태상황(太上皇)으로 추대했다.
경태제는 즉위 후, 우겸을 병부상서로 등용하고 북경 보위를 강화했으며 장수를 보내 오이라트를 원정하였다. 1450년(경태 원년) 8월 홍로사경(鴻臚寺卿) 양선(楊善)에게 군사를 딸려 르 공략했다. 그는 를 설득 의 명나라 송환을 설득했다. 그러나 경태제는 형 정통제가 되돌아올 경우 정통제가 복위할 것과 내심 자신을 해칠 것으 걱정했다. 정통제가 명나라로 송환되자 그는 명목상 태상왕으로 우대하고 유궁에 감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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