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조
강조(康兆, ? ~ 1011년 1월 7일(음력 11월 24일))는 고려의 관리이다.
출생~사망 964년 ~ 1010년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전 11:45
강조(康兆, ? ~ 1011년 1월 7일(음력 11월 24일))는 고려의 관리이다.
정변을 일으켜 1009년 2월에 목종을 폐위하고 대량원군(고려 현종)을 세운 후 1010년 11월까지 현종을 보좌하여 섭정을 맡았다. 요나라가 강조의 정변을 구실로 침략한 제2차 고려-거란 전쟁 때 맞서 싸우다가 포로로 끌려가 처형당했다.
생애
관료 생활
983년, 강조는 성종(成宗)의 하급 궁료로 천거된 이후 991년에 무관으로 관직에 본격 출사하였다. 997년, 성종이 후계 없이 죽고 18세의 목종(穆宗)이 보위에 오르자, 모후 천추태후가 섭정하고 외척이 득세하였다. 성종 때 천추태후와 추문을 일으켜 유배된 김치양(金致陽)도 다시 기용되었다. 김치양은 마음대로 정치를 하면서 1003년 천추태후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을 목종의 후계자로 삼으려고 했다. 당시 강조는 중추사 우상시였으며 외직으로 나가 서북면 도순검사가 되었다.
목종이 병석에 누워 있으면서 김치양의 계획을 알고 황보유의를 파견하여 대량원군을 맞아 오게 하고, 전중감 이주정이 김치양측에 가담한 것을 알고 서북면 도순검부사로 임명해 떠나게 한 뒤, 서북면 도순검사 강조에게 개경으로 와 자신을 호위할 것을 명하였다.
생애 후반
1009년 1월에 목종은 대량원군을 후계자로 삼는 작업에 착수하면서, 궁궐 수비를 위해 중추사 우상시 겸 서북면 도순검사인 강조에게 개경으로 올 것을 은밀히 지시하였다. 당시 세간에는 목종이 위독한 틈에 김치양 등이 나라를 빼앗으려 한다는 풍문이 돌았고 왕이 죽었다는 헛소문까지 전해지자, 강조는 군사 5천명을 거느리고 개경으로 향했다. 도중에 평주(平州 : 지금의 황해도 평산)에서 왕이 아직 죽지 않았다는 보고를 듣고 주저했으나, 부하 장수들과 회의한 뒤 개경으로 들어가 목종을 퇴위시키고 2월 3일 대량원군을 왕으로 세웠다. 이와 함께 김치양 부자를 죽이고 천추태후와 그 무리들을 귀양보냈으며, 양국공(讓國公)으로 폐했던 목종을 죽였다.
이 문서는 한국어 위키백과의 「강조」 문서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r39704937)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원문 기여자 목록은 원문 역사에서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전 11:45 · r1034 · 문서 내용은 CC BY-SA 4.0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