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반석
강반석(康盤石, 1892년 5월 7일 ~ 1932년 7월 31일)은 김일성의 어머니로, 일제강점기의 사회운동가이다. 강반석의 행적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의해 미화되어 실제 내용은 확인하기 어렵다. 남편 김형직의 조선국민회 운동을 도왔으며 여성 항일단체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녀의 아버지는 강돈욱이다.
출생~사망 1892년 4월 21일 ~ 1932년 7월 31일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17
강반석(康盤石, 1892년 5월 7일 ~ 1932년 7월 31일)은 김일성의 어머니로, 일제강점기의 사회운동가이다.
강반석의 행적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의해 미화되어 실제 내용은 확인하기 어렵다. 남편 김형직의 조선국민회 운동을 도왔으며 여성 항일단체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녀의 아버지는 강돈욱이다.
생애
평안남도 대동군 룡산면 하리 칠골(오늘의 평양시 만경대구역 칠골1동)에서 교육자며 목회자인 강돈욱과 위돈신의 차녀로 태어났다. 기독교 가정에서 칠골교회를 다니면서 자랐으나, 여자를 학교에 보내지 않는 시대적 분위기 때문에 교육은 받지 못하였다. 1908년 이웃 마을의 김형직과 결혼하여 만경대로 시집왔다. 한편 남편 김형직이 처가인 강씨 일가와 원만하지 못하여 친정을 떠나 살기도 했다.
그는 독립운동에 가담한 김형직의 활동을 도왔다. 특히 집에 찾아오는 독립운동자들의 뒷바라지를 하였다.1 1917년 3월부터 남편이 활동하는 봉화리에 자리를 옮겨 그의 혁명활동을 내조하였다. <조선국민회>가 결성되어 활동할 시기에는 집에는 전보다 많은 손님들이 들끓었다.1 비밀모임을 할 때에는 밖에서 망을 보는 일로 한 역할을 하기도 했다. 1919년에는 남편의 혁명활동 근거지가 중강, 림강, 8도구, 무송으로 옮겼기 때문에 그리로 가서 활동하였다. 때로는 통신 쪽지를 전달하는 연락 일도 했다. 오빠 강진석 선생의 무기를 옮겨주는 일, 여성들을 반일사상으로 교양시키는 일도 했다.1 김형직 선생이 1924년 12월 또다시 일제경찰에 체포되었을 때 독한 술과 명태를 구해 황씨에게 주어 탈출을 기도하게 하였고, 1926년 6월 5일 남편이 순직하게 되자 맏아들을 중학교까지 공부시키라고 남긴 유언을 받들어 학비마련에 길림 육문중학교에 입학시키느라고 모진 고생도 하였다.1
1919년 남편인 김형직이 조국광복회 사건에 연루되자, 일본 경찰을 피해 만주로 피신했다. 아들인 김일성이 등사기로 발행한 신문 《새날》을 배포하여 항일의식을 부추겼다는 일화가 있으며, 일제의 식민지통치를 반대하여 반일부녀회(현 의 전신)를 결성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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