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와고에성 전투
가와고에성 전투(일본어: 河越城の戦い 가와고에조노타타카이[*])는 일본 센고쿠 시대에 일어난 전투로 간토 지역의 정세를 뒤바꾼 중요한 전투 중 하나이다. 호조 우지야스(北条氏康)군 대 우에스기 노리마사(上杉憲政), 우에스기 도모사다(上杉朝定), 아시카가 하루우지(足利晴氏) 등의 연합군이 무사시국의 가와고에성 부근(현 사이타마현 가와고에시)에서 전투를 벌여 호조군이 대승리를 거두었다. 오케하자마 전투(桶狭間の戦い), 이쓰쿠시마 전투(厳島の戦い)와 더불어 일본 3대 야전(日本三大夜戦)으로 손꼽히며, 가와고에 야전(河越夜戦)이라고도 불리
시작~종료 1545년 10월 ~ 1546년 5월 19일마지막 수정 2026. 10. 15. 오후 2:08
가와고에성 전투(일본어: 河越城の戦い 가와고에조노타타카이[*])는 일본 센고쿠 시대에 일어난 전투로 간토 지역의 정세를 뒤바꾼 중요한 전투 중 하나이다. 호조 우지야스(北条氏康)군 대 우에스기 노리마사(上杉憲政), 우에스기 도모사다(上杉朝定), 아시카가 하루우지(足利晴氏) 등의 연합군이 무사시국의 가와고에성 부근(현 사이타마현 가와고에시)에서 전투를 벌여 호조군이 대승리를 거두었다. 오케하자마 전투(桶狭間の戦い), 이쓰쿠시마 전투(厳島の戦い)와 더불어 일본 3대 야전(日本三大夜戦)으로 손꼽히며, 가와고에 야전(河越夜戦)이라고도 불리고 있다.
배경
무로마치 시대 후기부터 간토 지방의 패권을 둘러싸고 고가 구보(古河公方)와 간토 간레이(関東管領)이 대립으로 일어난 교토쿠의 난(享徳の乱), 간토 간레이 직을 세습하던 우에스기가 내부에서도 야마노우치 우에스기 가문(山内上杉家)와 사가미(相模), 무사시(武蔵)를 기반으로 힘을 키운 우에스기 가문의 서가(庶家)인 오기가야쓰 우에스기 가문(扇谷上杉家)의 대립으로 일어난 조쿄의 난(長享の乱)등 많은 전란이 일어나 간토 지방은 혼란한 상황이었다.
이 혼란한 시기를 틈타 오기가야쓰 우에스기 가문의 영지였던 사가미로 호조 소운(北条早雲)이 진출하여 오기가야쓰 측인 오모리씨(大森氏), 미우라씨(三浦氏)를 차례로 멸망시키면서 세력을 넓혔다. 소운의 아들 호조 우지쓰나(北条氏綱)는 에이쇼의 난(永正の乱)으로 고가 구보와 간토 간레이 양측이 내분으로 혼란스러워 하는 틈을 타 무사시로 진출하여 (江戸城)과 오기가야쓰 우에스기 가문의 본거지인 가와고에 성을 함락하여 오기가야쓰 우에스기가를 멸망 직전까지 몰아넣었다. 우지쓰나가 병으로 사망하자, 고가 구보, 간토 간레이(야마노우치 우에스기 가문), 오기가야쓰 우에스기 가문, 세 가문은 동맹을 맺고 호조 가문에 대한 반격을 개시하여, 극소수를 제외한 간토의 무사 대부분을 모아 를 공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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