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에로니 아우구스틴 루보미르스키
인물 · 정치·외교 · 1647년 1월 20일 ~ 1706년 4월 20일 · 50.0411, 21.9989
히에로니 아우구스틴 루보미르스키는 폴란드-리투아니아 공화국의 대귀족, 정치가, 군사 지도자, 공(제국 제후)이다。
- 출생
- 1647년, [[폴란드-리투아니아 공화국]], [[제슈프]]
- 사망
- 1706년 4월 20일, [[폴란드-리투아니아 공화국]], 제슈프
- 배우자
- 콘스탄치아 폰 알텐보쿰
- 자녀
- 안나, 마리아나, 엘주비에타, [[알렉산데르 야쿱 루보미르스키|알렉산데르 야쿱]], [[예지 이그나치 루보미르스키|예지 이그나치]], 얀, 야쿱
- 부친
- [[예지 세바스티안 루보미르스키]]
- 모친
- 콘스탄치아 리겐차
히에로니 아우구스틴 루보미르스키(Hieronim Augustyn Lubomirski, 1647년 - 1706년 4월 20일)는 폴란드-리투아니아 공화국의 대귀족, 정치가, 군사 지도자, 공(제국 제후)이다.
생애
헤트만 예지 세바스티안 루보미르스키와 콘스탄치아 리겐차의 삼남이다. 비시니치, 야로스와프 및 제슈프의 영주였다.
플로츠크의 성직록 수도원장이자 몰타 기사단의 기사였으며, 1676년부터 왕관령 대기수, 1683년부터 왕관령 궁내 부장관, 1692년부터 왕관령 재무장관, 1702년부터 크라쿠프 현령, 크라쿠프 성주 및 왕관령 야전 헤트만을 역임했고, 같은 해 안에 공화국 최고 군사령관인 왕관령 대헤트만으로 승진하였다. 1675년 백독수리 훈장을 받았다.
얀 3세 소비에스키의 지휘 아래 크림 타타르와 오스만 제국 군과 싸웠고, 1673년의 호틴 전투에도 종군하였다. 또한 장형 스타니스와프 헤라클리우시와 마찬가지로, 1665년 부친이 일으킨 루보미르스키의 반란에 가담하는 것을 거부하였다. 1681년 통상 세임의 의장으로 선출되었다.
1683년의 제2차 빈 포위에서 용맹함을 보여 명성을 떨쳤다. 또한 이어진 헝가리에서의 전역(대튀르크 전쟁)에도 종군하였다. 1697년 국왕 자유 선거에서는 프랑스인 콩티 공 프랑수아 루이를 지지하였다.
1704년 작센 출신의 아우구스트 2세에 적대하는 바르샤바 연맹에 참가했으며, 국왕 공위가 선언되자 스웨덴의 지원을 받아 스스로 폴란드 왕위에 오르려고 획책하였다. 그러나 스웨덴 정부가 스타니스와프 레슈친스키를 새 왕으로 선택하자, 실의 속에 정계에서 은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