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블로 이바노비치 라자렌코
인물 · 정치·외교 · 1953년 1월 23일 · 47.6660, 33.1194
파블로 이바노비치 라자렌코는 우크라이나의 정치인이다. 전 총리이다. 1992년 3월부터 [[드니프로페트로우시크 주]] 대통령 대표. 1994년 6월, 드니프로페트로우시크 주 회의 의장, 우크라이나 인민대의원에 선출. 1995년 9월부터 제1부총리, 1996년 5월부터 1997년 7월까지 총리. 총리 재임 중 라자렌코는 부가가치세를 국가 독점으로 하고, 통화 개혁을 실시하여 우크라이나의 통화 단위인 [[흐리우냐]]를 도입했다. 또한 천연가스의 수입·판매를 자유화하여 [[율리야 티모셴코]]에게 막대한 부를 가져다주었다. 총리 퇴진 후
파블로 이바노비치 라자렌코(우크라이나어:Павло Іванович Лазаренко파블로 이바노비치 라자렌코, 1953년 1월 23일 - )는 우크라이나의 정치인이다. 전 총리이다.
1992년 3월부터 드니프로페트로우시크 주 대통령 대표. 1994년 6월, 드니프로페트로우시크 주 회의 의장, 우크라이나 인민대의원에 선출.
1995년 9월부터 제1부총리, 1996년 5월부터 1997년 7월까지 총리. 총리 재임 중 라자렌코는 부가가치세를 국가 독점으로 하고, 통화 개혁을 실시하여 우크라이나의 통화 단위인 흐리우냐를 도입했다. 또한 천연가스의 수입·판매를 자유화하여 율리야 티모셴코에게 막대한 부를 가져다주었다.
총리 퇴진 후 라자렌코는 당시 레오니트 쿠치마 대통령에게 적대적이었다. 1997년 8월부터 최고회의 내 '에드니스치(통일)' 교섭단체의 대표. 1997년 9월, 야당 '플로마다'의 당수로 선출. 1998년 최고회의 선거에서 '플로마다'는 4% 장벽을 넘을 수 있었다.
1998년, 스위스에서 금융 사기 혐의로 체포. 보석 후 키예프로 돌아왔다. 1999년 2월 9일, 우크라이나 검찰청은 라자렌코의 불체포특권 박탈을 최고회의에 요구했고, 2월 15일 그는 국외로 도피했다. 2월 17일, 최고회의는 라자렌코의 불체포특권 박탈을 가결하고 그의 체포에 동의했다. 이 의결 직후 '플로마다'는 소멸했고, 율리야 티모셴코 등 그 전 당원들은 새 정당 '바티키우시치나(조국)'를 창설했다. 검찰청의 보고서에 따르면, 라자렌코는 유럽 여러 나라에 450만 스위스 프랑과 200만 미국 달러의 계좌를 부정하게 개설하여 국가에 200만 달러 이상의 손해를 입혔다고 한다.
1999년 2월 20일, 라자렌코는 뉴욕을 방문하여 정치 망명을 요청했으나, 오히려 새로운 혐의로 체포되었다. 미국 사법 당국은 총액 3억 달러의 돈세탁, 부패 및 사기 혐의를 제기했다. 이후 막대한 보석금을 내고 보석되어 보호 관찰 상태에 있다. 2006년 8월 25일 미국 법원은 공갈, 돈세탁, 부패 및 사기죄로 징역 9년과 벌금 1000만 달러의 판결을 내렸다. 우크라이나에서의 라자렌코 재판은 2001년 여름에 시작되었다. 2001년 9월, 우크라이나 검찰총장은 청부살인 관여라는 새로운 혐의를 라자렌코에게 제기했다. 그러나 라자렌코의 우크라이나 송환은 실현되지 않았다.
개인 정보
드니프로페트로우시크 주 카르포프카 마을 출신.
1978년, 드니프로페트로우시크 농업대학 졸업. 경제학 박사. 5등급 야로슬라프 현공 훈장 수훈.
기혼. 아들 1명, 딸 2명을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