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 고사포 사단 (독일 국방군)
단체·기관 · 정치·외교 · 1938년 ~ 1945년
제1 고사포 사단은 나치 독일 시기 독일 공군이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편성한 사단이다. 베를린 중심부의 방공을 담당했다.
제1 고사포 사단(1. Flak-Division)은 나치 독일 시기 독일 공군이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편성한 사단이다. 베를린 중심부의 방공을 담당했다.
역사
1938년 여름 무렵부터 베를린의 방공 담당 부대 편성이 검토되기 시작했으며, 같은 해 8월 1일 제1 방공대(Luftverteidigungskommando 1)가 편성되었다. 초대 사단장은 브라운 대령(Braun)이었으나 8월 4일 사고로 사망했다. 후임으로 선출된 게르하르트 호프만 소장은 1940년 6월 23일까지 재임했다. 이후 베르너 프렐베르크 대령(Werner Prellberg)이 지휘를 맡았고, 7월 5일 루트비히 시리파르트 소장(Ludwig Schliffahrt)으로 교대했다. 1940년 9월 1일 제1 고사포 사단으로 개칭되었다.
제1 고사포 사단에 주어진 임무는 대베를린 권역의 방공이다. 지휘 계통상 제3 공군관구 사령부(Luftgaukommando III)에 직속되었으며, 다음과 같은 하급 편제를 포함했다.
- 제12 고사포 연대(Flakregiment 12)
- 제22 고사포 연대(Flakregiment 22)
- 게네랄 괴링 고사포 연대(Flakregiment „General Göring“)
전력으로는 중고사포 중대 60개, 중·경고사포 중대 35개, 탐조등 중대 17개, 방어용 기구 중대 6개, 대공 기관총 중대 9개를 보유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했을 때 제12 고사포 연대는 베를린 남동부 방공을 위해 랑크비츠에 전개해 있었다. 또한 신설된 제32 고사포 연대가 베를린 북서부 방공을 위해 라이니켄도르프에 본부를 설치하고 있었다. 게네랄 괴링 고사포 연대는 공군 총사령부를 방어하기 위해 포츠담에 전개해 있었다. 개전 후 제1 고사포 사단은 전쟁 이전과 같은 수준의 방공 능력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졌고, 이후 중고사포 중대는 53개, 중·경고사포 중대는 24개, 탐조등 중대는 12개까지 감축되었다. 1940년 8월 중순부터는 서부 전선에서 방공 전력의 수요가 늘어났기 때문에, 중고사포 중대는 19개, 중·경고사포 중대는 12개까지 줄었다. 나중에는 탐조등 중대도 8개까지 감축되었다. 이러한 전력 차출이 겹친 결과 제1 고사포 사단은 베를린 상공을 완전히 방어할 능력을 잃었으며, 특히 야간 폭격에 대해서는 거의 무력한 상태가 되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제3 공군관구 사령부 소속 장성들이 이례적으로 항의하기도 했다. 1940년 8월 영국 공군의 첫 공습이 이루어지자 제1 고사포 사단은 급히 증강되었다. 이때 건설된 것이 이른바 베를린 고사포탑으로, 여기에는 12.8cm 쌍연장 고사포가 설치되었다. 1941년 12월의 포고에 따라 사단의 전력은 중고사포 중대 53개, 중·경고사포 중대 23개, 탐조등 중대 26개까지 증강되도록 정해졌으나, 탐조등 중대를 제외한 전력이 전쟁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지는 못했다.
연합국의 공습이 격화되는 가운데 대베를린 권역의 방공 체제는 계속 강화되었다. 1941년 12월 31일 시점에 대베를린 권역에는 중고사포 중대 75개, 중·경고사포 중대 49개, 탐조등 중대 24개가 합계로 배치되어 있었다. 1943년 11월 1일 시점에 제1 고사포 사단에는 다음과 같은 하급 편제가 있었다.
- 제22 고사포 연대(남부 고사포단) - 랑크비츠 주둔
- 제53 고사포 연대(북부 고사포단) - 하일리겐제 주둔
- 제126 고사포 연대(서부 고사포단) - 라이니켄도르프 주둔
- 제172 고사포 연대(동부 고사포단) - 1944년 8월 25일 해산
- 제82 탐조등 연대
1944년 1월 이후에도 전력 재편이 계속되었다. 최종적으로 제국 수도권(Reichshauptstadt)에는 중고사포 중대 104개가 배치되었으나, 한편 중·경고사포 중대는 25개, 탐조등 중대는 20개까지 줄어들었다. 이처럼 대규모 방공 전력이 배치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베를린의 대부분은 1944년 말까지 파괴되었다. 다만 방공 체제가 특히 강화되어 있던 주요 산업 시설과 철도망 등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었다. 1944년부터 1945년에 걸쳐 동부 전선에서 소비에트 연방의 공세가 격화되자, 국내의 방공 전력이 전선으로 차출되었고 제1 고사포 사단도 축소를 강요받았다. 이전에 57개를 보유했던 중고사포 중대는 44개까지 줄어들었다.
1945년 2월 제1 고사포 사단은 베를린 방어에서 지상 전력으로 투입되기로 결정되었다. 제53 고사포 연대는 오데르강 방면의 방공 임무를 위해 사단에서 이탈했다. 또한 육군 측에서는 제1 고사포 사단을 해체하여 47개의 고사포 전투대(Flakkampftruppen)를 결성하는 계획이 세워져 있었다. 그러나 이 시점에 이미 사단에는 중고사포 중대 44개만 남아 있었으므로 계획을 달성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실제로 몇 개의 고사포 전투대가 편성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베를린에서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인원을 징집했고, 상설로 설치된 것을 제외한 모든 방공 장비를 집결시켜 약화된 방공 전력을 조금이라도 보충하려 시도되었다.
패전
1945년 4월 중순, 제1 고사포 사단은 제2 고사포 군단의 지휘 아래 들어갔다. 사단 본부는 패전 때까지 베를린 동물원 고사포탑에 설치되어 있었다. 이 고사포탑이 지상 부대에 대한 화력 지원을 지휘하기에 가장 적합한 위치에 있었고 전력도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1945년 5월 2일 방어 사령관 헬무트 바이들링 장군의 지휘 아래 베를린에 전개한 독일군 전 부대가 항복했으며, 제1 고사포 사단의 잔여 병력은 붉은 군대의 포로가 되었다1.
그 후
과거 사단 본부가 자리했던 베를린 동물원 고사포탑은 1947년 1월 해체되기 전까지 임시 주택으로 이용되었다2.
참고 문헌
- Georg Tessin: Verbände und Truppen der deutschen Wehrmacht und Waffen-SS im Zweiten Weltkrieg 1939–1945. Band 14. Die Landstreitkräfte. Namensverbände. Die Luftstreitkräfte. Fliegende Verbände. Flakeinsatz im Reich 1943–1945. Biblio-Verlag, Bissendorf 1980, ISBN 3764811110
- Karl-Heinz Hummel (2010), Die deutsche Flakartillerie 1935–1945. Ihre Großverbände und Regimenter (ドイツ語), Zweibrücken: VDM, ISBN 978-3-86619-048-1。